조선 전기의 왕족.
태종 이방원의 11남이자 서7남으로, 어머니 숙의 이씨에게는
장남이자 유일한 아들이며 태종이
상왕이 된 후 낳은 첫 아들이다.
전주이씨 후령군파의 파시조이다.
태종 아들들의
군호는 전부 가운데에 ‘편안할 녕(寧)’ 자가 들어가있다. 그런데 후령군의 군호는 ‘녕’이 아닌 ‘령’으로 읽는다. 물론 ‘寧’의 원래 발음이 ‘녕’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후녕군’이 맞다. 하지만 예전부터 '寧'의 앞 글자가 받침이 없는 경우 활음조 현상으로 인해 '령'으로 읽고 썼기 때문에 이를 반영한 후령군으로 부르는 게 적절하다. 자세한 것은 '
寧' 항목 참조.
둘째 적형(嫡兄)
효령대군과 이복형
혜령군,
희령군의 군호 발음도 같은 경우이다.
1429년(
세종 9년) 10월 27일에
[1] 후령군(厚寧君)에 봉해졌다.
# 천성이 조신하고 사람들에게 인망을 많이 쌓았으며 어려서부터 의리를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무안군부인
평산 신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딸 한 명을 두었다. 이 딸은
신숙주의 아들인
신정과 혼인하였다.
둘째부인 동양군부인
한양 조씨 사이에서는 2남 1녀를 두었다. 딸은 배맹종과 혼인하였다.
장남 정해도정 이집(貞海都正 李緝)은 슬하에 5남을, 차남 암성수 이윤(巖城守 李綸)은 2남 1녀를 두었고,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후령군파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