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황룡사 장륙삼존불상 불두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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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삼보로 널리 알려진 경주 황룡사 장륙삼존불상(丈六三尊佛像)의 불두 파편으로 추정되는 유물.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었다.

2. 내용

파일:황룡사 장륙삼존불상 불두 파편2.jpg
1982년 2월 14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발견 기사.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의 머리 파편으로, 신라삼보 중 하나인 경주 황룡사 장륙삼존불상의 일부분으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청동 두피두(나발)이라고도 부르는데, 만약 정말로 이것이 신라삼보라는 그 장륙존상의 일부가 맞는다면 제작연대는 신라 진흥왕 35년(574)이다.

파일:황룡사 장륙삼존불상 불두 파편9.jpg
파일:황룡사 장륙삼존불상 불두 파편4.jpg

발견된 불두 파편으로 계산한 장륙삼존불상의 머리 크기. 유물 뒷쪽 배경에는 장륙삼존불상 3점과 함께 있었던 십대제자의 모습을 그려놓았는데 각 그림당 크기는 본존불 기준으로 약 2 m이다.

파일:황룡사 장륙삼존불상 불두 파편10.jpg
사진 출처 : 동아일보

기록상에 따르면 황룡사 장륙삼존불상은 현대 미터법으로 따지면 4~5 m 정도 크기였다고 한다. 이 불두 파편과 황룡사 금당지에 있는 장륙삼존불상 대좌 받침석으로 보아 실로 대단한 거불이었던 듯.

파일:황룡사 장륙삼존불상 불두 파편3.jpg
황룡사 금당지 장륙삼존불상 대좌 받침석(574년)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 최대 불상으로 도다이지 대불(14.98미터)이 있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불상으로 황룡사 장륙삼존불상이 있었다. 단 도다이지 대불이 1좌인 반면 황룡사 장륙삼존불상의 경우 삼존(三尊)이란 명칭처럼 대형 불상 총 3좌를 모셨고, 그 뒤로 이 셋보다 약간 작은 십대제자상 10좌를 추가배치했음을 대좌 유물로 알 수 있다. 또한 청동 대불인 일본 도다이지 대불과는 달리 모두 황금으로 도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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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황룡사 장륙삼존불상 불두 파편7.jpg
파일:황룡사 장륙삼존불상 불두 파편8.jpg
사진 출처 : 황룡사 역사문화관

전문 고고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제작한 영상. 위와 같이 삼존불과 십대제자, 기타 불상을 통틀어 총 19좌에 이르는 대형 불상들이 일렬 배치되었을 것이다.

이 유물이 장륙삼존불상의 파편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기록상으론 분명 장륙삼존불상의 전체 크기가 4~5 m 정도라고 전해지는데, 이 불두 파편으로 불상의 크기를 계산해보니 머리 크기만 거의 2 m미터에 육박한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정도 머리크기로 전체 불상의 크기를 계산하면 기존 기록의 두배가 넘는 9~11 m 정도라고 예상한다.

황룡사의 장육상이 만들어졌는데, 구리가 3만 5007근, 도금이 1만 198푼 들었다.
鑄成皇龍寺丈六像 銅重三萬五千七斤 鍍金重一萬一百九十八分 [삼국사기 권제4, 10장 앞쪽, 신라본기 4 진흥왕]

단 위와 같이 삼국사기 등 기록물에 황룡사 장륙삼존불상의 크기가 4~5 m라고 명확하게 기록된 것은 아니다. 현대인들이 불상의 장륙(丈六)이란 명칭으로 1장 6척이니 약 4~5 m 정도일 것이라고 대략 추정한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영묘사, 법림사 등에도 장륙삼존불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이 불상들이 신라삼보 중 하나로 손꼽히는 황룡사 장륙삼존불상과 크기가 같진 않았을 것이다.

영묘사의 장육삼존과 천왕상과 아울러 전탑의 기와, 천왕사의 탑 아래 팔부신장, 법림사의 주불 삼존과 좌우의 금강신 등은 모두 양지가 만든 것이다.
靈廟丈六三尊 天王像 幷殿塔之瓦 天王寺塔下八部神將 法林寺主佛三尊 左右金剛神等 皆所塑也 [삼국유사 권제4, 9장 뒤쪽, 의해 5 양지사석]

파일:황룡사 장륙삼존불상 불두 파편6.jpg

황룡사 장륙삼존불상의 크기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금산사미륵장륙상(金山寺彌勒丈六像)이 그것으로, 조선 인조 5년(1627)에 만들어진 거대 금동 장륙삼존불상인데, 그 크기가 11.82미터이다. 사찰 기록에 따르면 신라 혜공왕 2년(766)에 만든 신라불상이 원본으로, 정유재란 때 원본 불상이 파괴되자 똑같은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동경잡기 등 기록으로 보아 황룡사 장륙삼존불상이 17세기까지는 건재했다. 연구자들은 위의 금산사미륵장륙상이 당시 현존하던 황룡사 장륙삼존불상의 모습을 참조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데 특히 양다리 위에 간략한 옷주름 및 양팔에 걸쳐져 아래로 흘러내리며 이루는 옷주름 표현의 기본적인 양식이 신라 불상의 양식과 일치하여 그 신빙성이 매우 높다. 굳이 황룡사 장륙삼존불상이 아니더라도 사찰의 기록으로 신라시대 불상을 그대로 복원했다고 나오는 만큼 황룡사 장륙삼존불상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중요 참고자료가 된다.

이와는 별개로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이 불두 파편이 황룡사 장륙삼존불상 중 본존불의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위에 있듯 황룡사 장륙삼존불상은 석가모니, 문수보살, 보현보살 3좌이고, 그 옆에는 이보다 작은 대형 황금 불상 16좌가 더 있었기 때문. 만약 이 불두가 본존불이 아닌 문수보살, 보현보살상에서 나온 것이라면 중앙에 자리잡았을 본존불은 현재의 계산보다도 훨씬 더 클 것이다.

참고로 문화재적 가치와는 관계없이 크기만 놓고 본다면 한국에는 이미 이 곳의 삼존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