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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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몰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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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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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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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황덕화는 1875년생이며 충청도 영동현 남이면 창동리(현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용화리 창골) 출신이다. 그는 1907년경 신명선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했고, 그해 11월 30일 황이만(黃二萬) 등 동료 의병 8·9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충남 금산군에 사는 음대보(陰大甫)와 김내삼(金來三) 집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1908년 4월 10일 신명선 의진의 일원으로서 문태수 의진과 합세하여 전남 장수읍을 습격하고 순사주재소에서 군수품을 노획하는데 참여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8년 11월 30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0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09년 1월 19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황덕화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08년 4월 10일 신명선 의진의 일원으로서 문태수 의진과 합세하여 전남 장수읍을 습격하고 순사주재소에서 군수품을 노획하는데 참여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8년 11월 30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0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09년 1월 19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황덕화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