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내용
김종직이 도연명의 술주시를 화답하였는데, 그 서문에 이르기를,
"나는 젊어서 술주를 읽고 그 뜻을 살피지 못했는데, 도연명의 시에 화답한 탕동간의 주소를 보고서야 소상히 영릉[4]을 애도하는 시임을 알게 되었다. 아아, 탕공이 아니었다면 유유의 찬시의 죄와 연명의 충분의 뜻이 거의 숨어버릴 뻔하였도다.
그 수사[5]를 하기 좋아한 것은, 그 뜻이 ‘유유가 바야흐로 창궐하니, 이때에는 내 힘이 능히 용납되지 못하므로 나는 다만 내 몸을 깨끗이 할 따름이요, 언어에 나타내서 적족[6]의 화를 불러들이게 하여서는 안된다.’ 여긴 것이나, 지금 나는 그렇지 않다. 천 년 아래 났으니, 어찌 유유가 두려울소냐. 그러므로 유유의 흉역을 모조리 폭로하여 탕공의 주소 끝에 붙이노니, 후세의 난신 적자가 나의 시를 보고 두려워한다면 《춘추》의 일필에 비교할 수 있으리라."
하였는데, 그 시는 없어졌다. 윤필상 등이 아뢰기를,
"이 서문에 말한 것은 조의제문보다도 심한 점이 있어서 차마 말을 못하겠습니다."
하고, 드디어 그 시권을 올린 뒤 그 뜻을 해석하기를,
"그 ‘이는 영릉을 애도하는 시다.’라고 한 것은, 영릉을 노산에 비한 것이요, 그 ‘유유의 찬시의 죄’라 함은 유유를 세조에게 비한 것이요, 그 ‘《춘추》의 일필에 비교한다.’ 함은 맹자가 ‘《춘추》가 지어지자 난신 적자가 두려워했다.’ 말했으므로 《춘추》에 비한 것이요, 그 ‘창천을 속일 수 있다 생각하여 높이 요·순의 훈업을 읍한다.’ 함은, 유유의 수선을 세조에게 비한 것이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세상에 어찌 이와 같은 일이 있으랴! 그 제자마저 모조리 추핵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였다. 노사신이 수창하여 윤필상·한치형과 아뢰기를,
"연루자는 마땅히 국문해야 할 것이오나 만약 제자라 해서 모조리 추핵한다면 소요를 이룰까 걱정이옵니다. 동한이 당인 다스리기를 너무 심하게 하여 종말에 쇠란하였으니, 지금 만연시킬 수 없습니다."
하였다.
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17일 신해 4번째기사
3. 결과
이런 글이 연달아 드러나면서, 사림세력은 완전히 쑥대밭이 된다. 조의제문 때문에 사단이 난 상태에서, 이 화술주시 때문에 그야말로 김일손과 그 일파들은 가혹한 숙청의 바람을 피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