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娘
생몰년도는 미상으로, 조선 선조대의 인물이며 직업은 기생이다.
조선시대 뛰어난 문예작품을 남긴 기녀로, 황진이, 이매창과 함께 떠오르는 인물로, 특히 홍랑의 경우에는 기생으로서의 정조를 노래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 시대 3당 시인 중 하나였던 고죽 최경창이 1573년(선조 6년) 북도평사로 발령받아 임지로 갈 때, 함경도 봉원군수가 이를 축하하기 위해 연회를 열었고 이 때
1583년 최경창이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홍랑은 시묘살이를 자처한다. 이때 그녀는 자신의 용모를 훼손해 다른 남자들의 접근을 막고 오로지 시묘만 했는데, 3년간 시묘살이를 하고 3년 후에도 그 근방에서 묘를 지켰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경창의 시를 챙겨 고향으로 피난, 그 후 난이 가라앉자 되돌아왔다. 홍랑 사후에는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바로 아래에 묻혔다. 이건 정말 엄청난 건데, 그 고지식한 양반가에서 기생을 가문의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대우해줬다는 거다! 더군다나 관에 속한 기생의 경우에는 원래 빼돌리는 것 자체도 불법이었다.
홍랑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다음 시조는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묏버들가(歌)>, 묏버들 가려 꺾어로 불리는 이 시조는 원래 제목이 없었으나, 훗날 최경창이 제목을 붙여준 것이다.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묏버들 골라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자시난 창밧긔 심거두고 보소서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님곳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소서 (밤비에 새잎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KBS에서 방영했던 역사 프로그램인 <한국사 전(傳)> 50회에서 최경창과 홍랑의 기막힌 사랑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