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일생
2.1. 초기 경력
2.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1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하자. 미카엘은 프랑스의 바이에른 원정대에 가담하여 프라하 공략전에 참가했고 2개 척탄병 대대를 지휘하여 에그라 요새 공략에 기여했다. 1742년, 미카엘은 프랑스 육군 소장으로 진급했고 6월부터 12월까지 그림 벨 아일 공작 샤를 루이 오귀스트 푸케의 지휘하에 프라하 방어전에 참여했다가 아군과 함께 프랑스로 철수했다. 1743년 1월, 미카엘은 바이에른에서의 여러 전투에 참여했고 같은 해 2월 20일에 준장으로 진급했으며, 5월 14일에 야전관 사령관을 맡았다. 그해 7월, 그는 바이에른 제 4군단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왔고, 노아유 원수 밑에서 알자스 방면에 주둔해 임무를 수행했다.
1744년 4월, 미카엘은 코이니 원수의 지휘하에 린강 방면 군단에 배속되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비상부르 탈환전에 참가했고 아우게넘 전투에도 가담했다. 이후 세귀르 공작의 군단과 함께 바이에른에서 겨울을 보낸 그는 1745년 4월 파펜호펜 전투에서 분전했으나 패배를 면치 못하고 세귀르 공작을 따라 퇴각했으며 5월에 바랭 군단에 가담해 콩티 공작 밑에서 복무했다. 1746년 2월 16일, 미카엘은 중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그는 콩티 공작의 군대와 함께 몽스와 샤를루아 공성전에 참가했으며 모리스 드 삭스 원수가 지휘하는 프랑스 본군과 함께 1746년 10월 11일 로쿠스 전투에서 영국-헤센-네덜란드 연합군과 맞붙어 승리했다. 같은 해 11월 27일, 미카엘은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프란체스카 폰 팔츠-줄츠바흐 공주와 결혼했다.
1744년 4월, 미카엘은 코이니 원수의 지휘하에 린강 방면 군단에 배속되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비상부르 탈환전에 참가했고 아우게넘 전투에도 가담했다. 이후 세귀르 공작의 군단과 함께 바이에른에서 겨울을 보낸 그는 1745년 4월 파펜호펜 전투에서 분전했으나 패배를 면치 못하고 세귀르 공작을 따라 퇴각했으며 5월에 바랭 군단에 가담해 콩티 공작 밑에서 복무했다. 1746년 2월 16일, 미카엘은 중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그는 콩티 공작의 군대와 함께 몽스와 샤를루아 공성전에 참가했으며 모리스 드 삭스 원수가 지휘하는 프랑스 본군과 함께 1746년 10월 11일 로쿠스 전투에서 영국-헤센-네덜란드 연합군과 맞붙어 승리했다. 같은 해 11월 27일, 미카엘은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프란체스카 폰 팔츠-줄츠바흐 공주와 결혼했다.
2.3. 7년 전쟁
7년 전쟁이 발발한 1757년 11월, 프랑스 정부는 그를 오스트리아군 장성으로 전근시키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오스트리아로 간 그는 포르포르타티 드래곤 부대를 인계받고 기병대 대장으로 승진했다. 1758년 1월 18일, 미카엘은 제국 야전군 원수로 승진했고 지난 해에 로스바흐 전투에서 전멸한 제국군을 재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해 5월 작센 침공 작전을 위해 집결한 오스트리아군을 지휘한 그는 9월 5일 소넨슈타인 요새를 공략해 대포 38문, 곡사포 7문, 부대기 10기를 노획했다. 이후 10월 14일, 그는 호크키르히 전투에 참가해 프리드리히 대왕의 프로이센군을 격파하는 데 일조했다. 또한 11월에 라이프치히를 포위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고 이후 제국군을 겨울 숙영지에 배치된 후 빈으로 돌아갔다.
1759년, 미카엘은 제국군을 이끌고 8월 5일 라이프치히를 함락하고 8월 14일엔 토르가우를 점령했으며, 8월 22일엔 베텐베르크를, 그리고 9월 5일엔 드레스덴을 공략했다. 그러나 프로이센군은 그해 9월에 비텐베릌, 토르가우, 라이프치히를 탈환했다. 11월20일, 미카엘은 다운 백작 레오폴트 요제프의 지휘하에 막센 전투에 가담해 프로이센군 14,000명을 항복시키는 데 일조했고 12월에 다시 빈으로 돌아갔다. 1760년 1월 6일, 미카엘은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받아 황금 양모 기사 직위를 수여받았고 1월 21일에 마리아 테레지아 훈장을 수여받았다. 1760년 8월 20일 스트레일라 전투에서 프로이센군과 맞붙어 패배했지만 며칠 후 프로이센군이 철수하면서 스트레일라 마을을 점거한 그는 토르가우와 비텐베르크 요새를 공략했다. 그러나 11월 3일 토르가우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이 악전고투 끝에 승리하자, 미카엘은 라이프치히와 토르가우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1761년, 미카엘은 군직에서 물러나면서 제국군의 지휘권을 요한 폰 세르벨로니에게 넘겨줬다.
1759년, 미카엘은 제국군을 이끌고 8월 5일 라이프치히를 함락하고 8월 14일엔 토르가우를 점령했으며, 8월 22일엔 베텐베르크를, 그리고 9월 5일엔 드레스덴을 공략했다. 그러나 프로이센군은 그해 9월에 비텐베릌, 토르가우, 라이프치히를 탈환했다. 11월20일, 미카엘은 다운 백작 레오폴트 요제프의 지휘하에 막센 전투에 가담해 프로이센군 14,000명을 항복시키는 데 일조했고 12월에 다시 빈으로 돌아갔다. 1760년 1월 6일, 미카엘은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받아 황금 양모 기사 직위를 수여받았고 1월 21일에 마리아 테레지아 훈장을 수여받았다. 1760년 8월 20일 스트레일라 전투에서 프로이센군과 맞붙어 패배했지만 며칠 후 프로이센군이 철수하면서 스트레일라 마을을 점거한 그는 토르가우와 비텐베르크 요새를 공략했다. 그러나 11월 3일 토르가우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이 악전고투 끝에 승리하자, 미카엘은 라이프치히와 토르가우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1761년, 미카엘은 군직에서 물러나면서 제국군의 지휘권을 요한 폰 세르벨로니에게 넘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