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생애 및 사후
1875년(고종 12년) 2월 19일, 소현세자의 8대손 이재철(李載徹)의 아들로 태어났다.[3] 청안군 이재순의 아들로 입양되었으나[4], 1890년(고종 27년) 8월 1일에 15세의[5] 어린 나이로 별세하였다.
시신은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 홍제원 답동리에 안장되었다가 1964년 경기도 포천군 주내면 선단4리[6] 산 11번지 전계대원군 묘소 근처로 이장하였다. 그의 묘소는 전계대원군과 완양부대부인 내외의 묘소, 소실 용성부대부인 묘소의 동쪽 150m 지점에 있다.
순종 때인 1907년(융희 원년) 10월 14일에 종 2품 가선대부 종정원경(嘉善大夫 宗正院卿)에 추증되었고, 풍선군(豐善君)으로 추봉되었다.[7] 즉 풍선군의 작호는 죽은 뒤 받은 것. 1909년(융희 3년) 7월 20일 정2품 자헌대부 규장각제학(正二品資憲大夫奎章閣提學)에 추증되었고 1910년(융희 4년) 8월 21일 순정효황후가 풍선군 부인 정부인 홍씨에게 훈 2등에 서훈하고 서봉장(瑞鳳章)을 하사하였다. 이후 풍선군과 관련된 기록은 없다.
시신은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 홍제원 답동리에 안장되었다가 1964년 경기도 포천군 주내면 선단4리[6] 산 11번지 전계대원군 묘소 근처로 이장하였다. 그의 묘소는 전계대원군과 완양부대부인 내외의 묘소, 소실 용성부대부인 묘소의 동쪽 150m 지점에 있다.
순종 때인 1907년(융희 원년) 10월 14일에 종 2품 가선대부 종정원경(嘉善大夫 宗正院卿)에 추증되었고, 풍선군(豐善君)으로 추봉되었다.[7] 즉 풍선군의 작호는 죽은 뒤 받은 것. 1909년(융희 3년) 7월 20일 정2품 자헌대부 규장각제학(正二品資憲大夫奎章閣提學)에 추증되었고 1910년(융희 4년) 8월 21일 순정효황후가 풍선군 부인 정부인 홍씨에게 훈 2등에 서훈하고 서봉장(瑞鳳章)을 하사하였다. 이후 풍선군과 관련된 기록은 없다.
3. 후손
[1] 왜 취소선 처리되었는지는 본문 참조.[2] 왜 취소선 처리되었는지는 본문 참조.[3] 인조 이종 - 소현세자 이왕 - 경안군 이회 - 임창군 이혼 - 밀원정 이용 - 이항석(생부는 밀원정 이용의 형 밀풍군 이탄) - 이원형 - 이정현 - 이교응 - 이재철 - 풍선군 이한용.[4] 언제 입양이 되었는 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5] 세는나이 16세.[6] 경기도 포천시 포천동 선단4통.[7] 군호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豊山邑)에서 유래했다.[8] 1908년(융희 2년) 청풍군(淸豊君)으로 책봉. 근데 눈여겨 볼 건 이미 이 전에 이해승의 직계가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입양이 되었단 점이다. 실제로는 월산대군의 후손(...), 뭐 어때 고종의 5촌 조카 이지용은 아예 세종대왕 때 갈라진 광평대군의 후손인데 그래서 풍선군과는 실제 혈통 상으로 33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