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소개
2. 생애
기원전 220년부터 로마 공화국에 편입된 이탈리아 파타비움(오늘날의 파도바) 태생이다. 리비우스는 고향 파타비움에서 40살까지 살았는데, 전형적인 파타비움 토박이였다. 그래서 본인의 저서에 고향에서 내려온 전설[1]을 사실처럼 기술했고, 로마 공화국의 어느 도시보다도 로마 공화주의와 전통적인 로마적 가치를 중시한 파타비움적인 색채가 강했다.[2]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리비우스는 어떤 공직에도 나간 적이 없었고, 로마군에 차출되거나 지원해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았다. 또한 로마의 문필가, 철학자 등과도 일체 교류한 흔적이 없을 정도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상술했듯이 정치쪽과는 완전히 담을 쌓고 역사 저술에만 몰두한 리비우스는 공화정의 전통적인 가치와 로마인의 전통을 강조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슷한 나이였던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와 친분을 쌓았고, 그가 후원한 문학 클럽 서클의 일원이기도 했다. 따라서 원로원 중심의 전통적인 공화정에 대해 비교적 목소리가 분명했던 역사가임에도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프린켑스정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 또 그는 아우구스투스의 요청으로 황제의 손자 클라우디우스를 문하생에 두고 스승으로 지도하기도 했다. 훗날 리비우스가 지도한 클라우디우스는 황제가 됐는데, 그는 즉위 전까지 로마사 권위자로 상당히 유명했다.
상술했듯이 정치쪽과는 완전히 담을 쌓고 역사 저술에만 몰두한 리비우스는 공화정의 전통적인 가치와 로마인의 전통을 강조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슷한 나이였던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와 친분을 쌓았고, 그가 후원한 문학 클럽 서클의 일원이기도 했다. 따라서 원로원 중심의 전통적인 공화정에 대해 비교적 목소리가 분명했던 역사가임에도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프린켑스정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 또 그는 아우구스투스의 요청으로 황제의 손자 클라우디우스를 문하생에 두고 스승으로 지도하기도 했다. 훗날 리비우스가 지도한 클라우디우스는 황제가 됐는데, 그는 즉위 전까지 로마사 권위자로 상당히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