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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
| 통영 해저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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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완공 이후 근 백 년가량이 지난지라 워낙 오래되어 바닷물이 스며드는 등 노후화되었으며, 운하교인 충무교(판데다리)가 완공된 후 1967년 경부터 자전거를 제외한 차량의 통행은 금지되어 있다.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해저터널 건설에는 꽤나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보통이라면 다리를 지었겠지만 그곳이 하필 착량묘(鑿梁廟) 자리였던 것. 착량묘는 착량지 부근에 위치해 있는데, 착량지는 당포 해전 당시 패주하던 왜군이 해협에 다리를 만들어 도주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2] 이 때문에 당시 일본인들은 조상들의 시체가 있던 곳 위를 지나갈 수 없다고 하여 다리를 짓는 대신 해저터널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해당 위치에 통영대교, 충무교가 있다.[3]
원래 이름은 태합굴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가리키는 의미다. 처음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때엔 통영태합굴이라는 가칭을 썼다가 이름의 유래가 되는 사람이 사람인 만큼 논란이 되어 결국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내부에는 터널 역사 및 통영 관광 정보 전광판이 있다.
이 해저터널 건설에는 꽤나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보통이라면 다리를 지었겠지만 그곳이 하필 착량묘(鑿梁廟) 자리였던 것. 착량묘는 착량지 부근에 위치해 있는데, 착량지는 당포 해전 당시 패주하던 왜군이 해협에 다리를 만들어 도주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2] 이 때문에 당시 일본인들은 조상들의 시체가 있던 곳 위를 지나갈 수 없다고 하여 다리를 짓는 대신 해저터널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해당 위치에 통영대교, 충무교가 있다.[3]
원래 이름은 태합굴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가리키는 의미다. 처음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때엔 통영태합굴이라는 가칭을 썼다가 이름의 유래가 되는 사람이 사람인 만큼 논란이 되어 결국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내부에는 터널 역사 및 통영 관광 정보 전광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