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山 羊氏
후한 중기부터
서진 시대까지 명망을 떨친 중국의 가문이다. 태산 양씨는 실질적인 시조부터 양호가 등장하는 9세대까지 2천 석 이상의 관리를 역임하고 모두 청렴하다는 평판을 받은 명문가였다.
남북조시대 이후로도 명성있는 이들이 있었으나, 서진 이후로는 두각을 드러낸 유명 인사가 다른 가문에 비해 소수인 등 가문이 쇠락했다고 보이는 편이다. 주로 본관으로 표기한 연주(兗州) 태산군(泰山郡)
[1] 내의 신태현, 양보현, 거평현, 남성현 등에 거주하였다.
태산 양씨는 이 당시 다른 문벌들도 그랬지만 많은 혼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중 대성(大姓)으로 노국 공씨, 진류 채씨, 초국 하후씨(조위 종실), 영천 신씨, 동해 왕씨, 하내 사마씨(양진 황실), 낭야 왕씨, 진군 사씨, 하내 산씨를 들 수 있다.
영가의 난으로
동진이 성립하여
남북조시대가 되자, 양씨 일족도 남북조로 나뉘어 출사하게 되었는데, 각 조정에서도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명망을 떨쳤고, 박릉 최씨, 조군 이씨, 청하 최씨 등 신흥 명문과도 혼맥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