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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태봉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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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태봉산 설화
2.2. 태실 발견
광주시립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태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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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明天啓四年九月初三日辰時 誕生王 王男大君阿只氏胎 天啓五年三月二十五日藏
천계 4년(1624년) 9월 3일 진시에 대군 아기씨(阿只)를 낳았고 그 태를 천계 5년(1625년) 3월 25일에 묻는다
- 석판에 적힌 명문
2.3.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사실 태봉산은 1939년 "광주시가지계획"이 수립되었을 때부터 헐릴 예정이었다. 이 계획은 1960년대 후반에 와서 거의 그대로 시행된다. 태봉산이 사라진다고 했을 때 근처 어르신들은 '화룡승천'이란 풍수지리를 들먹이며 완강하게 반대했는데, "여의주인 태봉산이 있어야만 용이 하늘에 오를 수 있어 광주가 재난을 받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만약 태봉산을 헐어 없애면 10여년내로 광주에는 큰 난리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칠 것이다."라는 극단적인 도참설까지 들고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반대 의견은 지역 주민들에 국한되었으며 시민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아쉽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였다고 한다.# 결국 1967년∼1969년 광주시가지 정리계획에 따라서 경양방죽과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반대 의견은 지역 주민들에 국한되었으며 시민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아쉽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였다고 한다.# 결국 1967년∼1969년 광주시가지 정리계획에 따라서 경양방죽과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3. 여담
4. 참고문헌
- 광주광역시 시청각자료실, 태봉산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태봉산 태실, 2018.
- 조광철, [광주갈피갈피]태봉산, 2008.
- 조광철, [광주갈피갈피]경양방죽과 운명 함께 한 태봉산, 2017.
[1] 우리나라 시골 마을에서 꽤 흔하게 존재하는 전설이다. 마을의 진산에 어떤 명당이 있으나, 그 명당에 묘를 쓰면 묘를 쓴 집안은 복을 받되 마을에는 가뭄 등 재앙이 닥친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이 전해지는 산에는 툭하면 누군가가 남몰래 관을 묻어, 마을 사람들이 청년들을 데리고 뒤져보면 발견되곤 했다. 운 좋게 안 들킬 수도 있는데, 마을 사람들 몰래 관을 쓰고 봉분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무덤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 줄도 모르고 드러내놓고 성묘도 할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