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한국어
| 타브리즈 역사 지구
|
영어
| Tabriz Historic Bazaar Complex
| |
아랍어
| مجموعة البازار التاريخي في تبريز
| |
프랑스어
| Ensemble du bazar historique de Tabr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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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위치
| 이란 동아제르바이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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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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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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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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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도시
تبریز 타브리즈 | Tabriz | ||
지역
| 동아제르바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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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325km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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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560,000 명
| |
도시권 인구
| 1,800,000 명
| |
인구밀도
| 4,800명/km²
| |
1. 개요
## https://en.m.wikipedia.org/wiki/Tabriz
페르시아어·아제르바이잔어 تبریز
영어 Tabriz
이란 서북부 이란령 아제르바이잔 주의 도시. 인구는 174만명으로, 이란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13세기 말에 일 칸국의 수도로, 16세기 초에 사파비 왕조의 첫 수도로 번영하였고 특산물로 카펫과 금속세공품, 특히 사모바르가 유명하다.
아제르바이잔 주라는 이름답게 주민 대부분이 튀르크계의 아제리인이다. 터키 도시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튀르크계가 많다. [7]애초 이곳을 수도로 했던 일 칸국부터 튀르크계 국가다. 정확히는 홀라구의 자손들이 튀르크화된 튀르크화한 몽골 제국으로 칭기즈 칸 왕통을 지니고 있는 엄연한 튀르크 이슬람 국가였는지라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도심의 그랜드 바자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우르미아 호의 동안의 해발 1500m의 고지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페르시아어·아제르바이잔어 تبریز
영어 Tabriz
이란 서북부 이란령 아제르바이잔 주의 도시. 인구는 174만명으로, 이란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13세기 말에 일 칸국의 수도로, 16세기 초에 사파비 왕조의 첫 수도로 번영하였고 특산물로 카펫과 금속세공품, 특히 사모바르가 유명하다.
아제르바이잔 주라는 이름답게 주민 대부분이 튀르크계의 아제리인이다. 터키 도시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튀르크계가 많다. [7]애초 이곳을 수도로 했던 일 칸국부터 튀르크계 국가다. 정확히는 홀라구의 자손들이 튀르크화된 튀르크화한 몽골 제국으로 칭기즈 칸 왕통을 지니고 있는 엄연한 튀르크 이슬람 국가였는지라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도심의 그랜드 바자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우르미아 호의 동안의 해발 1500m의 고지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2. 역사
2.1. 상고대
2.2. 고대
2.3. 중세
파일:Tabriz-16.png
중세 타브리즈의 지도
이슬람 정복 이후에 타브리즈에는 남부 아라비아 (예메니) 출신의 아즈드 부족이 정착하였다. 한 세기 후, 지진으로 도시는 파괴되었다.
그러자 791년,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의 왕비 주브이다흐가 손수 거금을 투입하여 도시를 아릅답게 재건, 현재까지도 타브리즈의 건설자로 불린다.
중세 타브리즈의 지도
이슬람 정복 이후에 타브리즈에는 남부 아라비아 (예메니) 출신의 아즈드 부족이 정착하였다. 한 세기 후, 지진으로 도시는 파괴되었다.
그러자 791년,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의 왕비 주브이다흐가 손수 거금을 투입하여 도시를 아릅답게 재건, 현재까지도 타브리즈의 건설자로 불린다.
2.4. 13세기
2.5. 일 칸국의 수도
2.6. 14세기
2.7. 15세기
2.8. 사파비 왕조의 수도
2.9. 대 오스만 투쟁
2.10. 18세기의 수난
https://en.m.wikipedia.org/wiki/Tabriz 1673년의 도시
1721년, 대지진이 도시를 덮쳐 8만 여명의 시민이 사망하였고 1724년, 호타키 왕조와의 전쟁에서 오스만 군대가 타브리즈를 함락하고 이듬해까지 영위하며 그동안 20만 여명이 학살되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이후 나디르 샤의 통치 동안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구가 더 감소하였다.
그후 잔드 왕조 시절인 1780년, 대지진이 발생, 20만명이 사망하면서 도시 인구는 3만명으로 줄며 많은 건물들이 버려졌고, 유령 도시가 되었다.
1721년, 대지진이 도시를 덮쳐 8만 여명의 시민이 사망하였고 1724년, 호타키 왕조와의 전쟁에서 오스만 군대가 타브리즈를 함락하고 이듬해까지 영위하며 그동안 20만 여명이 학살되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이후 나디르 샤의 통치 동안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구가 더 감소하였다.
그후 잔드 왕조 시절인 1780년, 대지진이 발생, 20만명이 사망하면서 도시 인구는 3만명으로 줄며 많은 건물들이 버려졌고, 유령 도시가 되었다.
2.11. 카자르 왕조
18세기의 혼란을 거치며 도시는 여러 가문의 통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가 1799년에 카자르 왕조의 왕자 아바스 미르자가 총독으로 부임하며 안정을 회복하였다.
그 후로도 카자르 왕자들이 총독을 맡으며웨일즈? 타브리즈는 다시금 그 중요성을 회복해 나갔다.
그 후로도 카자르 왕자들이 총독을 맡으며
2.12. 러시아의 간섭
굴리스탄 조약 (1813년)으로 캅카스를 뺏긴 카자르 조는 1827년, 러시아 제국군의 타브리즈 입성을 막지 못하였다. 러시아 군은 이듬해의 투르크만차이 조약으로 물러났지만 그 영향력은 지속되었다.
그 후 총독 미르자는 타브리즈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 현재의 시가지를 확정하였다. 20세기 들어 이란 북부를 점령한 소련은 타브리즈를 수도로 한 괴뢰국 아제르바이잔 인민 정부를 세우는데 1947년 이란에게 재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그 후 총독 미르자는 타브리즈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 현재의 시가지를 확정하였다. 20세기 들어 이란 북부를 점령한 소련은 타브리즈를 수도로 한 괴뢰국 아제르바이잔 인민 정부를 세우는데 1947년 이란에게 재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3. 갤러리
파일:Church_of_St_Stephen1.jpg
이란의 대표적 아르메니아 양식 건축물인 성 스테판 교회
파일:Tabriz-Iran.jpg
블루 모스크 내부
파일:Fig_-4_Kushk-2009_application-47.jpg
블루 모스크의 아라베스크 문양. 현재 복원 중이다
파일:Tabriz_blue_mosque_door.jpg
블루 모스크의 문
파일:Blue_Mosque_interior.jpg
블루 모스크의 회랑
https://en.m.wikipedia.org/wiki/Tabriz
https://www.google.co.kr/search?q=tabriz&client=ms-android-lgu-kr&prmd=imnv&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i84vaG9qHZAhVHVbwKHcZ1C-sQ_AUIESgB
이란의 대표적 아르메니아 양식 건축물인 성 스테판 교회
파일:Tabriz-Iran.jpg
블루 모스크 내부
파일:Fig_-4_Kushk-2009_application-47.jpg
블루 모스크의 아라베스크 문양. 현재 복원 중이다
파일:Tabriz_blue_mosque_door.jpg
블루 모스크의 문
파일:Blue_Mosque_interior.jpg
블루 모스크의 회랑
https://en.m.wikipedia.org/wiki/Tabriz
https://www.google.co.kr/search?q=tabriz&client=ms-android-lgu-kr&prmd=imnv&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i84vaG9qHZAhVHVbwKHcZ1C-sQ_AUIESgB
4. 관광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5]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6]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7] 터키어나 아제르바이잔어를 할 줄 알면 현지인들이 반가워하며 매우 친절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애초에 이곳 어르신들 중에는 페르시아어를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