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의 남성 성우로 평안북도 신의주시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58년 KBS 성우극회 공채 3기로 입사했다.[1]가 1961년[2]부터 MBC와 KBS 라디오에서 성우로 활동하면서 연극배우도 겸업했으며, 그의 대표작으로 형사 콜롬보의 콜롬보 반장 등이 있다. 스티브 맥퀸과 피터 포크를 잠시 전담했는데 스티브 매퀸은 1975년 양지운에게 넘겼다. 동기로는 김용림의 남편으로 유명한 남일우가 있다.[3]
하지만 이 분은 386세대의 아래 세대에게는 낯선 인물로 남아 있는데 1984년 9월 11일 고혈압으로 인한 심장마비[4]로 인하여 만 43살이라는 이른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당시 슬하에 2남 1녀가 있었다고 한다. 이완호에 따르면 술을 아주 좋아해서 끝장을 봐야 할 정도였다고 하며, 노래 또한 잘 불렀다고 했으니 재능이 매우 뛰어난 성우였다고 할 수 있다.4:17부터 언급됨 비슷하게도 같은 나이인 일본성우인 카니에 에이지도 1985년에 똑같은 43세라는 나이에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 콜롬보 역을 포함해 피터 포크 전담은 후배 배한성에게 넘어갔다. 원래 KBS는 형사 콜롬보가 미국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형사물이라는 말만 듣고 날렵한 형사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서 인기 성우를 미리 캐스팅했다. 하지만 수입한 필름을 보고 실망해서 최응찬에게 넘겼는데 이게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피터 포크의 목소리는 최응찬이 전담하는 것이 공식처럼 되었다. 최응찬의 사후 KBS는 추모 특집으로 형사 콜롬보를 방영한 바 있다.
여담으로 닥터후가 한국에서 '후 박사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됐을때 3대 닥터 역을 맡으신 분이 이 분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활동했던 유강진이 그레고리 펙과 찰턴 헤스턴을 이강식이 신성일과 로버트 테일러 등 전형적인 미남 스타들을 더빙하는 동안, 최응찬은 피터 포크 같이 능청스러우면서 코믹한 캐릭터나 헨리 폰다, 로렌스 올리비에, 피터 오툴, 스티브 맥퀸, 리 밴클리프등 고독하고 회의적인 캐릭터를 많이 맡았다.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58년 KBS 성우극회 공채 3기로 입사했다.[1]가 1961년[2]부터 MBC와 KBS 라디오에서 성우로 활동하면서 연극배우도 겸업했으며, 그의 대표작으로 형사 콜롬보의 콜롬보 반장 등이 있다. 스티브 맥퀸과 피터 포크를 잠시 전담했는데 스티브 매퀸은 1975년 양지운에게 넘겼다. 동기로는 김용림의 남편으로 유명한 남일우가 있다.[3]
하지만 이 분은 386세대의 아래 세대에게는 낯선 인물로 남아 있는데 1984년 9월 11일 고혈압으로 인한 심장마비[4]로 인하여 만 43살이라는 이른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당시 슬하에 2남 1녀가 있었다고 한다. 이완호에 따르면 술을 아주 좋아해서 끝장을 봐야 할 정도였다고 하며, 노래 또한 잘 불렀다고 했으니 재능이 매우 뛰어난 성우였다고 할 수 있다.4:17부터 언급됨 비슷하게도 같은 나이인 일본성우인 카니에 에이지도 1985년에 똑같은 43세라는 나이에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 콜롬보 역을 포함해 피터 포크 전담은 후배 배한성에게 넘어갔다. 원래 KBS는 형사 콜롬보가 미국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형사물이라는 말만 듣고 날렵한 형사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서 인기 성우를 미리 캐스팅했다. 하지만 수입한 필름을 보고 실망해서 최응찬에게 넘겼는데 이게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피터 포크의 목소리는 최응찬이 전담하는 것이 공식처럼 되었다. 최응찬의 사후 KBS는 추모 특집으로 형사 콜롬보를 방영한 바 있다.
여담으로 닥터후가 한국에서 '후 박사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됐을때 3대 닥터 역을 맡으신 분이 이 분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활동했던 유강진이 그레고리 펙과 찰턴 헤스턴을 이강식이 신성일과 로버트 테일러 등 전형적인 미남 스타들을 더빙하는 동안, 최응찬은 피터 포크 같이 능청스러우면서 코믹한 캐릭터나 헨리 폰다, 로렌스 올리비에, 피터 오툴, 스티브 맥퀸, 리 밴클리프등 고독하고 회의적인 캐릭터를 많이 맡았다.
2. 출연 작품
2.1. 애니메이션
- 집없는 소년(KBS)
- 호피와 차돌바위 - 도마술
2.2. 영화
2.3. 외화
2.4. 광고
2.5. 라디오 드라마
- 아차부인 재치부인(TBC)
[1] 당시 만 17세로 구민, 김용식, 박기량과 더불어서 미성년자라는 나이에 성우세계를 뛰어 넘었다.[2] 이때 만 20세.[3] 참고로 김용림은 KBS 4기 출신으로 이분에겐 후배다. 다만 빠른 41년생으로 음력상 김용림과 동갑이다.[4] 신문 등에는 고혈압이라고만 나왔다. 심장마비는 이완호의 증언.[5] 최초 방영시[6] 최초 방영시[7] 최초 방영시[8] 최초 방영시[9] 사후에는 배한성.[10] 사후에는 배한성.[11] 당시는 중앙일보-동양방송이 같은 회사이던 시절이다. 전두환 군부 정권이 방송 통폐합 하기 전.[12] 당시는 중앙일보-동양방송이 같은 회사이던 시절이다. 전두환 군부 정권이 방송 통폐합 하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