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애후 8년(기원전 710년),
곡옥(曲沃)의
백작이자, 진나라
통일의
주인공인
곡옥무공(
진무공)에게 분수 유역에서 패해 사로잡힌 뒤에 진나라
수도 익(翼)에서 그 아들
소자후를 옹립하자 진 무공에게
살해당했다. 살해된 이유는 아마도 진 애후의 아들인 소자후가 진나라 군주로 즉위해서
인질의 가치가 없어서라고 판단한 듯 싶다.
이름 즉
휘가 희광(姬光)인데, 재밌는 것은 진 애후의 본명에
합려로 넘어가게 설정된 이유는 진 애후의 이름과 합려의 이름이 희광으로
한자까지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명은 이쪽이 더 비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