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가원수 [2]
|
1. 임시정부
이 시기의 직함은 임시대총통.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8ED365><:> 대수
| 이름
| 임기시작
| 임기종료
| 재임기간
| 정당/군벌
| 비고
|
초대
| 1912.1.1
| 1912.3.10
| 70일
| 중국동맹회
| 난징에서 취임식을 거행
| |
제2대
| 1912.3.10
| 1913.10.10
| 1년 214일
| 본래 난징에서 취임할 예정이었으나
톈진에서의 폭동으로 행정 수도를 베이징으로 이동 |
2. 북양정부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8ED365><:> 대수
| 이름
| 임기시작
| 임기종료
| 재임기간
| 정당/군벌
| 비고
|
초대
| 1913.10.10
| 1916.6.6
| 2년 240일
| 북양군벌
| 국회 선출. 홍헌제제 실패후 병사
| |
계임
| 1916.6.7
| 1917.7.17
| 1년 40일
| 북양군벌
| 부총통 자격으로 계임.장쉰의 복벽으로 사임
| |
계임
| 1917.7.17
| 1918.10.10
| 1년 85일
| 리위안훙에 의해 계임.
| ||
제2대
| 1918.10.10
| 1922.6.2
| 3년 236일
| |||
계임
| 저우쯔지(周自齊)
| 1922.6.2
| 1922.6.11
| 9일
| 교통계
| |
복임
| 1922.6.11
| 1923.6.13
| 1년 2일
| 북양군벌
| 구국회 복구를 선언하며 복임.직례군벌의 압박으로 하야
| |
계임
| 가오링웨이(高凌霨)
| 1923.6.14
| 1923.10.10
| 118일
| ||
제3대
| 1923.10.10
| 1924.11.2
| 1년 23일
| 직예군벌
| ||
계임
| 황푸(黃郛)
| 1924.11.2
| 1924.11.24
| 22일
| 펑위샹의 허수아비.
| |
초대 임시 집정
| 1924.11.24
| 1926.4.20
| 1년 147일
| |||
대행
| 1926.4.20
| 1926.5.13
| 23일
| 외교관,국무총리 서리 자격으로 권한대행
| ||
대행
| 1926.5.13
| 1926.6.22
| 40일
| 외교관
| ||
대행
| 두시구이(杜錫珪)
| 1926.6.22
| 1926.10.1
| 101일
| 직예군벌
| |
대행
| 1926.10.1
| 1927.6.18
| 260일
| 외교관
| 국무총리 신분으로 국가원수 대행
| |
초대 중화민국 육해군 대원수
| 1927.6.18
| 1928.6.2
| 350일
|
3. 호법정부
이 시기에는 국가원수 이름이 대원수, 수석총재, 비상대총통 등에서 왔다갔다한다.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8ED365><:> 대수
| 이름
| 임기시작
| 임기종료
| 정당/군벌
| 비고
|
대원수
| 1917.9.1
| 1918.5.20
| 중화혁명당
| 호법정부 개조로 축출
| |
수석총재
| 1918.6.19
| 1920.11
| 정학회
| 월계전쟁으로 축출
| |
비상대총통
| 1921.4.7
| 1923.3.2
| 영풍함 사건으로 축출
| ||
대원수
| 1923.3.2
| 1925.3.12
| |||
대원수 대리
| 1925.3.12
| 1925.7.1
| 국민정부 수립
|
4. 국민정부
4.1. 광저우 국민정부~우한 국민정부
중산함 사건으로 왕징웨이가 퇴진한 이후로는 뚜렷한 국가원수를 내세우기도 힘든 상태이다. 광저우 국민정부 시기에는 중집위 상무위원장, 연석회의 주석 등이 난립하며 4.12 상하이 쿠데타 직전에는 아예 정부위원제가 운영된다.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8ED365><:> 대수
| 이름
| 임기시작
| 임기종료
| 정당/군벌
| 비고
|
정부주석
| 1925.7.1
| 1926.4.1
| 중산함 사건으로 하야
| ||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장
| 1926.5.22
| 1927.3.20
| |||
연석회의주석
| 1926.12.13
| 1927.3.20
| |||
국민정부 상무위원
| 1927.3.20
| 1927.9.15
| 영한합작으로 우한 국민정부 해체
|
4.2. 난징 국민정부
이 시기 중화민국은 국민당 일당독재 체제인 훈정(訓政)기간으로, 당시 중화민국 국가원수의 직함은 국민정부 주석이었다.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8ED365><:> 대수
| 이름
| 임기시작
| 임기종료
| 재임기간
| 정당
| 출신지[A]
| 학력
| 비고
|
1대
| 1928. 2. 7
| 1928.10.10
| 247일
| 청나라 진사
| ||||
2대
| 1928.10.10
| 1931.12.15
| 3년 66일
| 바오딩군관학교
| ||||
3대
| 1931.12.15
| 1943.8.1
| 11년 232일
| 학령영화중학
| 교통사고로 임기 중 사망
| |||
4대
| 1943.8.1
| 1948.5.20
| 4년 294일
| 바오딩군관학교
|
5. 중화민국 헌법 제정 이후
일반적으로 헌정이 시작된 이 시점부터 중화민국 총통의 대수를 센다. 리덩후이와 천수이볜, 차이잉원을 제외한 나머지의 출신지는 전부 현재는 중화인민공화국 영토. 어떻게 북부 출신들이 하나도 없다 그야 북부 출신은 죄다 군벌이었고, 중화민국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장제스의 기반이 어디였는지만 봐도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8ED365><:> 대수
| 이름
| 임기시작
| 임기종료
| 재임기간
| 정당
| 출신지[A]
| 학력
| 비고
|
1대
| 1948.5.20
| 1949.1.21
| 8개월
| 국공내전의 전세 악화로 인해 자진 하야.
| ||||
대행
| 1949.1.21
| 1950.3.1
| 1년 2개월
| 광서육군속성학교
| 국부천대 이후로 귀국 거부로 인해 장제스가 복직하여 대행에서 축출.
| |||
복귀
| 1950.3.1
| 1954.5.20
| 4년 2개월
| 저장 성
| ||||
2대
| 1954.5.20
| 1960.5.20
| 6년
| |||||
3대
| 1960.5.20
| 1966.5.20
| 6년
| |||||
4대
| 1966.5.20
| 1972.5.20
| 6년
| |||||
5대
| 1972.5.20
| 1975.4.5
| 2년 10개월
| |||||
대행
| 1975.4.6
| 1978.5.20
| 3년 1개월
| 상해
성요한대학 | ||||
6대
| 1978.5.20
| 1984.5.20
| 6년
| 저장성
| 소련 모스크바
손중산대학교 | |||
7대
| 1984.5.20
| 1988.1.13
| 3년 8개월
| |||||
대행
| 1988.1.13
| 1990.5.20
| 2년 4개월
| 신베이 시
| 첫 대만 출신 총통
타이베이 시장 출신 첫 총통 | |||
8대
| 1990.5.20
| 1996.5.20
| 6년
| |||||
9대
| 1996.5.20
| 2000.5.20
| 4년
| 직선제 개헌 후 3선
(이후 총통은 중임만 가능) | ||||
10대
| 2000.5.20
| 2004.5.20
| 4년
| 타이난 시
| 첫 정권교체
| |||
11대
| 2004.5.20
| 2008.5.20
| 4년
| |||||
12대
| 2008.5.20
| 2012.5.20
| 4년
| 중국 국민당 정권 복귀
| ||||
13대
| 2012.5.20
| 2016.5.20
| 4년
| |||||
14대
| 2016.5.20
| 2020.5.20
| 첫 여성 총통
민주진보당의 2번째 집권 | |||||
15대
| 2020.5.20
| 재임중
|
[1] 호법정부와 국민정부 초기 (우한과 광저우 시기)의 인물은 서술되어있지않다.[2] 호법정부와 국민정부 초기 (우한과 광저우 시기)의 인물은 서술되어있지않다.[3] 계임된 대총통은 대수를 따지지 않으며 공식적인 대총통 선거에서 당선된 위안스카이, 쉬스창, 차오쿤만 대수로 따진다.[4] 계임된 대총통은 대수를 따지지 않으며 공식적인 대총통 선거에서 당선된 위안스카이, 쉬스창, 차오쿤만 대수로 따진다.[A] 5.1 5.2 5.3 5.4 현재의 성급 행정구역 기준[9] 일본육군사관학교 21기 입학 예정이었으나 신해혁명에 참여하기로 결심해 입학을 포기하고 귀국했다.[10] 일본육군사관학교 21기 입학 예정이었으나 신해혁명에 참여하기로 결심해 입학을 포기하고 귀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