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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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기대와 주목을 받았던 FC 소쇼-몽벨리아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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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시절
파일:200909040102.jpg
천안시청 축구단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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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은퇴한 그의 최근 모습
모두의 기대와 주목을 받았던 FC 소쇼-몽벨리아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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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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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청 축구단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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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은퇴한 그의 최근 모습
이름
| 조원광 (趙源光 / Cho Won-Kwang)
|
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
포지션
| 수비수[2]
|
신체 조건
| 183cm / 74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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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입단
| 2002년 안양 LG 치타스
|
소속팀
| 안양 LG 치타스 (2002~2003)
FC 소쇼-몽벨리아르 (2004~2007.5)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7.5~2008) 천안시청 축구단 (2009)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0~2011.7) 천안시청 축구단(2011.7~2012) |
국가대표
| 5경기
|
1. 소개
2. 경력
2.1. 안양 LG 치타스
어린 나이에 축구 천재로 각광 받았으며 맨유가 귀화 전제로 영입을 제안한 사실이 화제가 되었었다.
조원광은 중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당시 조광래가 이끌던 안양에 입단했는데, 미성년자로선 파격적인 계약금과 연봉[3]을 받고 들어갔지만 해외 이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구단과 선수측에 갈등이 생겼던 바 있다. 조원광은 2군에만 머물러서는 자신의 기량 향상이 느릴 것으로 판단했다. 조원광이 상당기간 2군에 머물렀는데 이는 조원광이 유소년 시절 또래보다 뛰어난 피지컬로 중학교 무대를 평정했지만 중학교 이후로 신체적 성장이 멈추면서 성인무대에서는 평범한 피지컬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또래들과 경기에서 보여주었던 피지컬적인 우위에서 나오는 힘과 스피드를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그후 조원광은 PSV 아인트호벤, 스타드 렌, FC 소쇼-몽벨리아르 등과 협상을 하게 됐다.
조원광은 중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당시 조광래가 이끌던 안양에 입단했는데, 미성년자로선 파격적인 계약금과 연봉[3]을 받고 들어갔지만 해외 이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구단과 선수측에 갈등이 생겼던 바 있다. 조원광은 2군에만 머물러서는 자신의 기량 향상이 느릴 것으로 판단했다. 조원광이 상당기간 2군에 머물렀는데 이는 조원광이 유소년 시절 또래보다 뛰어난 피지컬로 중학교 무대를 평정했지만 중학교 이후로 신체적 성장이 멈추면서 성인무대에서는 평범한 피지컬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또래들과 경기에서 보여주었던 피지컬적인 우위에서 나오는 힘과 스피드를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그후 조원광은 PSV 아인트호벤, 스타드 렌, FC 소쇼-몽벨리아르 등과 협상을 하게 됐다.
2.2. FC 소쇼-몽벨리아르
2.3. 국내 무대에서
3. 여담
은퇴 후 천안시청 축구단 소속으로 유소년 선수들을 담당하고 있다가 2020년 현재는 서울 양강초등학교 축구부 코치로 일하고있다.
부친은 1960년대에 국가대표팀에서 스위퍼로 활약한 조인수 씨이고 큰아버지는 대한축구협회 상벌위원장 출신인 조정수 씨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많은 국내 지도자들이 그를 지도하기를 부담스러워 했다고 선수 본인이 언급한 적이 있다.
조광래 감독은 그를 두고 너무 성급하게 해외 진출을 추진한 것이 독이 되었던 것 같다고 회상하였다.
거스 히딩크가 PSV를 감독하고 있던 시절 입단테스트를 받았고, 마침 PSV가 참여한 피스컵[6]에 PSV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였다.
부친은 1960년대에 국가대표팀에서 스위퍼로 활약한 조인수 씨이고 큰아버지는 대한축구협회 상벌위원장 출신인 조정수 씨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많은 국내 지도자들이 그를 지도하기를 부담스러워 했다고 선수 본인이 언급한 적이 있다.
조광래 감독은 그를 두고 너무 성급하게 해외 진출을 추진한 것이 독이 되었던 것 같다고 회상하였다.
거스 히딩크가 PSV를 감독하고 있던 시절 입단테스트를 받았고, 마침 PSV가 참여한 피스컵[6]에 PSV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였다.
[1] 원래는 공격수였으나 2010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면서 포지션을 수비수로 변경했다.[2] 원래는 공격수였으나 2010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면서 포지션을 수비수로 변경했다.[3] 계악금 1억, 연봉 2000만원[4] 계약금 6억, 월급 1800만원에 주택과 차량에 통역까지 제공하는 조건이었다고 한다. 이는 당장 1군에 뛸 수도 없는 유망주에게는 굉장히 좋은 조건이었다.[5] 훗날 AS 모나코에서 박주영을 지도하게 된 기 라콤브[6] 2003년 피스컵 1회 대회 였으며 21번을 받았다. 그 전에 21번이었던 박지성이 등번호를 7번으로 변경한 직후였었는데 박지성이 7번 유니폼을 입자 기존에 21번으로 등록되어있어 부정 선수 지적을 받자 박지성이 조원광의 이름(W.K.CHO)이 마킹된 유니폼을 입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