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보병사단 포병여단
第七步兵師團 砲兵旅團 The 7th Infantry Division Artillery Brigade | ||||||
창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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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살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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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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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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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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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 7사단 예하 여단 화력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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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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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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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1949년 6월 20일 제7사단 창설 때 대대 규모로 창설되었다.
2010년 기준으로 105mm 3개 대대와 155mm 1개 대대로 구성되었으나 이후 105mm 대대 중 하나인 을지 56포병대대가 155mm 견인포로 전환해 105mm 2개 대대와 155mm 2개 대대로 구성되어있다가 최근에는 155mm 자주포 1개 대대,155mm 견인포 3개 대대로 개편되었다고 한다.
이후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에 의거, 상비사단과 지역방위사단이 개편돼 7사단 포병연대 역시 2020년부로 여단급으로 격상되었다.
2010년 기준으로 105mm 3개 대대와 155mm 1개 대대로 구성되었으나 이후 105mm 대대 중 하나인 을지 56포병대대가 155mm 견인포로 전환해 105mm 2개 대대와 155mm 2개 대대로 구성되어있다가 최근에는 155mm 자주포 1개 대대,155mm 견인포 3개 대대로 개편되었다고 한다.
이후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에 의거, 상비사단과 지역방위사단이 개편돼 7사단 포병연대 역시 2020년부로 여단급으로 격상되었다.
3. 예하부대
3.1. 여단 직할대
3.2. 제16포병대대 충무
3.3. 제56포병대대 을지
5보병여단 화력지원을 담당한다.
전투부대, 특히 포병으로는 거의 드물게 인명사고 20년 이상 무사고 부대이다.[3] 물론 온갖 위험물과 중량물을 다루는 곳인 만큼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없을 리는 없고, 2010년 차량 전복 사고라든지, 유격 훈련 행렬을 따라가던 구급차가 절벽 쪽으로 굴러떨어진다든지[4], 화재가 발생한 적도 있고, 105mm 견인포 가신에 찍힌다든지 해서 부상을 입는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게 레알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덕분인지 2006년경에는 포병 부대임에도 사단선봉 부대로 지명되기도 했다.[5] 하여간 모범 부대로 이쁨받아선지 사단 FEBA 부대로는 최초[6]로 신막사 건설이 되었다.
독립포대로 백마령 일대를 담당하는 북진포가 있다.
3.4. 제57포병대대 화랑
3.5. 제637포병대대 왕자
4. 출신인물
4.1. 여단장
역대 제7보병사단 포병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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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고
| 기타
|
초대
| 000
| 예) 대령
| 육사 00기
| 前 연대장
| |
00대
| 예) 소장
| 육사 39기
| 前 육군미사일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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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대
| 000
| 육사 00기
| 現 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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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장교/부사관
5. 기타
-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당시 피해주민을 위해 150만원을 모아 기부한 적이 있다.#
[1] 출처: http://himnanum.tistory.com/219[2] 출처: http://himnanum.tistory.com/219[3] 정확하게는 '자살과 사망사고가 없다'는 것이지만, 저 기간 동안 이걸 지켜낸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4] 당시 구급차에 탔었던 의무병의 증언에 의하면 탑승했던 군의관, 운전병, 의무병 모두 무사했으며 구급차도 무사해 견인 후 2011년 2월 당시에도 현역으로 운용되고 있었다.[5] 그래서 2011년 당시에도 대대본부 정문에 28년 무사고 전통 수립이라는 글귀가 대대에서 나가는 방향에 쓰여 있었다.[6] 2006년도부터 터파기 공사에 들어갔다.[7] 일단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에도 생활관에 들어가지 못한 채 포상에서 실사격 및 진지이동 준비를 갖춘 채, 먹고 자며 두 달간 대기했다. 사실 이는 이 부대만이 아니라 전방사단 155mm 운용부대의 공통적인 상황인데, 각자 담당한 보병부대를 포격 지원하기만 하면 되는 105mm와는 달리,155mm는 최장 18~20km라는 사거리와 강한 화력으로 GP의 지원사격 및 적 도발원점 타격을 주임무로 맡기 때문에 105mm보다 담당 범위와 임무도 많고 빠른 대응을 위해 언제든 실사격이 가능하도록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연평도 포격 이후로 조금만 대응사격이 늦어도 거센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뒤로는 더욱 부대 내 긴장감이 높아졌는데, 최전방 보병부대를 지원하는 105mm 견인포 부대들은 제일 최전선에 배치한 포대 즉, 추진포대를 제외하고는 1달도 안 돼서 포상대기 태세를 풀어버렸다는 걸 감안하면 이들의 압박감이 얼마나 심한지를 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