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정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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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경상도 영해도호부 서면 신리동
(현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
사망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학수는 1871년 경상도 영해도호부 서면 신리동(현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이수각(李壽珏) 등으로부터 독립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고받자 찬동한 뒤 3월 19일 창수동 소재 창수경찰관주재소 앞에 집결하여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또한 이수각 등 지도부의 지휘에 따라 앞장서서 주재소로 들어가 사무실 객방 및 주임순사 숙소를 부수는 한편, 주재소 공문서와 물품 등을 파괴하였다. 이어 창수동의 오용이(吳龍伊), 이강복(李康福), 박석문(朴石文)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였다.

이후 집집마다 감추어 두었던 주임순사 타카기 이사부로(高木伊三郞) 소유의 흑칠자 겹하오리 3매와 잡품 약 215종, 순사보 송상구의 소유의 서적 156책과 잡품 5종, 순사 권찬규 소유의 서적 85책과 잡품 2종, 순사 김경수 소유의 서적 49책과 잡품 약 3종을 파기한 다음 철수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정학수는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방해,상해,건조물손괴,기물손괴,공문서훼기,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후 영덕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0년 6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2010년 정학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