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정암진 전투
鼎巖津戰鬪 | ||
시기
| 1592년 7월 3일 (음력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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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조선 경상도 의령 남강 정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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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 일본군 6군의 전라도 진공(進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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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조선 파일:조선 어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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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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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의병 50여 명
| 선봉 2, 00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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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 피해 규모 불명
| 피해 규모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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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 곽재우 의병의 승리, 6군 선봉대 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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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 일본군 6군의 전라도 진공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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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투 전야
3. 전투
음력 5월 24일 왜장 안코쿠지 에케이(安國寺 惠瓊)[1]는 2000여 명의 선봉대를 정암진 인근으로 보내어 도하 지점을 골라 푯말을 세워두게 하였다. 그러나 이날 밤 곽재우의 의병들은 일본군이 세워놓은 푯말의 위치를 늪지대로 옮겨 세워두도록 하였고 이를 몰랐던 안코쿠지의 주력군은 푯말을 따라 진격하였으나 결국 늪지대에 빠지게 되어 미리 매복하던 곽재우의 의병에게 일제히 기습을 받아 크게 패배하고 말았다.
4. 결과 및 영향
[1] 안국사라는 절의 혜경이라는 법명의 중이다. 즉 안국사 주지스님인데 일본 전국시대에 큰 절의 주지는 거의 다이묘나 마찬가지였던 위치였다. 나중에 안고쿠지는 도요토미 사후 이시다 미쓰나리의 편을 들었다가 세키가하라 전투 패전 후, 참수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