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생애
1907년 경상북도 경주군(현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1]#에서 태어났다. 양동공립보통학교(현 양동초등학교), 안강공립심상고등소학교(현 안강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후 대구에서 조선양조사·중앙양조사·신흥초자공업사를 경영하는 등 실업계에 종사하였으며, 1950년 당시 경북중학교 장학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대구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조경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민주국민당, 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서 민주당에서 중앙위원, 경상북도당 상무위원, 정책위원회 의장 등을 지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서구-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종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강재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8.15 광복 후 대구에서 조선양조사·중앙양조사·신흥초자공업사를 경영하는 등 실업계에 종사하였으며, 1950년 당시 경북중학교 장학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대구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조경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민주국민당, 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서 민주당에서 중앙위원, 경상북도당 상무위원, 정책위원회 의장 등을 지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서구-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종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강재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3. 선거 이력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50
| 제2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제1선거구(대구시 갑구))
| 2,458표 (7.07%)
| 낙선 (4위)
| ||
1960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제6선거구[3])
| 11,207표 (31.66%)
| 당선
| ||
1963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제4지역구[5])
| 16,430표 (22.96%)
| 낙선 (3위)
| ||
1971
| 제8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제5지역선거구[7])
| 21,194표 (45.97%)
| 낙선 (2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