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상세
현왕과 여울과의 사이에서 약 백 년의 시간차가 존재하며 현왕의 후손으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기록이 없으므로 관계는 불분명하다. 5세기 말 동만주의 물길(勿吉)이 흥기해 고구려와 상쟁을 벌였고 부여까지 침략을 받게 되어 부여는 안전한 고구려 내지로 옮겨지게 된다.
사기에선 문자명왕 재위 기간 때 더이상 부여의 명맥을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부여 왕(잔왕)과 그의 처자들이 항복하였다고 한다.
사기에선 문자명왕 재위 기간 때 더이상 부여의 명맥을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부여 왕(잔왕)과 그의 처자들이 항복하였다고 한다.
2월, 부여왕이 처자를 데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였다.
한편 잔왕은 현왕 이후의 150년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누군가 첨가했다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두 부여는 이름만 같을 뿐 서로 다른 나라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