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7년(세종 19년)에 익현군으로 책봉되었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계유정난 당시
수양대군의 편에 서서 그를 도왔다. 그래서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후 좌익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 세조는 자신을 지지한 익현군을 매우 아꼈는데 익현군이 병석에 누웠을 때 내의 김길호를 보내 간병하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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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군부인 평양 조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딸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게 없다.
아들 괴산군 이지(槐山君 李漬)는 후사를 두지 못했다. 이후 괴산군의 양자로 익현군의 친형 의창군의 손자 화산군 이해(花山君 李諧)가 입적되었다.
# 화산군은 3남 1녀를 두었고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익현군파를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