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원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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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농구선수 | |
이름
| 이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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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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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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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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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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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사이즈
| 192cm, 90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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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소속팀
| 전주 KCC 이지스 (2006~2009, 201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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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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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농구선수로 선수 시절을 모두 전주 KCC에서만 보낸 선수였으나 안타깝게도 부상 등으로 인해 커리어를 쌓지 못한 선수였다.
2. 선수 시절
파일:중앙대 시절 강창수 감독, 윤병학, 이중원, 김광원, 함지훈, 정병국, 김영래 코치.jpg
중앙대학교 시절에는 탄력이 좋고 3점슛도 갖춘 포워드로 대학시절 4년간 주전과 식스맨을 넘나들며 활약했으나, 정작 4학년때 동기 허효진[1]과 후배 윤호영 등에 밀려 벤치로 밀리는 바람에 2006 KBL 드래프트에서 모든 팀들의 외면을 받아버리지만 다행히 주전들의 노쇠화로 리빌딩에 들어갔던 전주 KCC 이지스와 수련선수로 계약하게 된다.[2]
파일:기량발전상을 수상한 이중원.jpg
시즌 중반까지는 엔트리에 조차 끼지 못할 정도의 취급을 받았지만, 훈련 시 성실한 태도 및 향상된 기량을 보여주며 팀 선배인 이상민과 추승균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시즌 막판 5경기에는 아예 선발 주전멤버로 출장하여 평균 11.2득점을 올렸고, 이 활약 덕분에 정식으로 계약을 맺게 되며 짧은 출전시간에도 과감한 공격과 집요한 대인수비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상민이 삼성으로 이적하고 서장훈이 FA 계약으로 새로 합류한 2007-08 시즌에는 정훈 등을 제치고 팀의 핵심인 식스맨 자리를 차지했고, 특히 외국인 선수가 1명만 뛸수 있는 2쿼터에는 토종 빅맨 서장훈과 함께 주전 3번으로 출장해 평균 4.6득점-1.4리바-0.7어시를 기록하며 전시즌 꼴찌팀 전주 KCC가 07-08 시즌 정규리그 2위에 오르는데 공헌한다.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못한 수련선수에서 팀의 핵심 식스맨으로 환골탈태하며 너무도 당연하게 07-08 시즌 기량발전상을 차지했고, 바로 다음 시즌에는 하승진-강병현이 합류한 뒤에도 여전히 팀의 중심 식스맨으로 활약해 챔피언을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시즌을 마친 뒤에는 상무에 입대해 2010 세계 군인농구선수권 대회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의 사상 첫 우승을 따내는 등 우승청부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나, 제대 후 복귀한 2011-12 시즌에는 정민수와 김태홍 등 젊은 포워드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데다 발목 부상까지 겹치며 군 입대전보다 그만큼의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고 회복도 불가능해지면서 임의탈퇴가 결정되며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만다.
은퇴한 뒤에는 현재 모교 삼일상고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중앙대학교 시절에는 탄력이 좋고 3점슛도 갖춘 포워드로 대학시절 4년간 주전과 식스맨을 넘나들며 활약했으나, 정작 4학년때 동기 허효진[1]과 후배 윤호영 등에 밀려 벤치로 밀리는 바람에 2006 KBL 드래프트에서 모든 팀들의 외면을 받아버리지만 다행히 주전들의 노쇠화로 리빌딩에 들어갔던 전주 KCC 이지스와 수련선수로 계약하게 된다.[2]
파일:기량발전상을 수상한 이중원.jpg
시즌 중반까지는 엔트리에 조차 끼지 못할 정도의 취급을 받았지만, 훈련 시 성실한 태도 및 향상된 기량을 보여주며 팀 선배인 이상민과 추승균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시즌 막판 5경기에는 아예 선발 주전멤버로 출장하여 평균 11.2득점을 올렸고, 이 활약 덕분에 정식으로 계약을 맺게 되며 짧은 출전시간에도 과감한 공격과 집요한 대인수비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상민이 삼성으로 이적하고 서장훈이 FA 계약으로 새로 합류한 2007-08 시즌에는 정훈 등을 제치고 팀의 핵심인 식스맨 자리를 차지했고, 특히 외국인 선수가 1명만 뛸수 있는 2쿼터에는 토종 빅맨 서장훈과 함께 주전 3번으로 출장해 평균 4.6득점-1.4리바-0.7어시를 기록하며 전시즌 꼴찌팀 전주 KCC가 07-08 시즌 정규리그 2위에 오르는데 공헌한다.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못한 수련선수에서 팀의 핵심 식스맨으로 환골탈태하며 너무도 당연하게 07-08 시즌 기량발전상을 차지했고, 바로 다음 시즌에는 하승진-강병현이 합류한 뒤에도 여전히 팀의 중심 식스맨으로 활약해 챔피언을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시즌을 마친 뒤에는 상무에 입대해 2010 세계 군인농구선수권 대회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의 사상 첫 우승을 따내는 등 우승청부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나, 제대 후 복귀한 2011-12 시즌에는 정민수와 김태홍 등 젊은 포워드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데다 발목 부상까지 겹치며 군 입대전보다 그만큼의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고 회복도 불가능해지면서 임의탈퇴가 결정되며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만다.
은퇴한 뒤에는 현재 모교 삼일상고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