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생애
고조의 일곱째 아들인 이원창은 무덕 3년(620년)에 노왕으로 책봉되고, 정관 5년(631년)에 화주(華州) 자사로 임명되었으며, 정관 10년(636년)에 한왕(漢王)으로 책봉된다. 이원창은 화주에 있을 때 불법적인 짓을 많이 행하여 형인 당태종이 자주 꾸짖었는데, 이로 인해 당태종을 원망했다.
이원창은 태종의 태자인 이승건과 친하게 지내 아침저녁으로 놀았으며, 좌우로 나누어 두 개의 편으로 만들어 이승건, 이원창이 각기 그 한 편씩을 통솔하고 털로 짠 갑옷, 대나무로 만든 창을 갖춰 진을 펼쳐 큰 소리를 지르면서 교전해 치고 찔러 피를 흘리면서 이를 즐거움으로 삼았다.
이원창은 이승건에게 반란을 권유하였고 당태종 옆의 미인이 비파를 잘 탄다면서 반란이 성공하면 내려달라고 했지만, 결국 반란 모의가 당태종에게 발각되었다. 당태종이 이원창의 죽음을 면하게 하려 했지만 여러 신하들이 굳게 다투자 이원창은 집에서 자결했으며, 이원창의 어머니, 처, 아들 등은 용서받았다.
이원창은 태종의 태자인 이승건과 친하게 지내 아침저녁으로 놀았으며, 좌우로 나누어 두 개의 편으로 만들어 이승건, 이원창이 각기 그 한 편씩을 통솔하고 털로 짠 갑옷, 대나무로 만든 창을 갖춰 진을 펼쳐 큰 소리를 지르면서 교전해 치고 찔러 피를 흘리면서 이를 즐거움으로 삼았다.
이원창은 이승건에게 반란을 권유하였고 당태종 옆의 미인이 비파를 잘 탄다면서 반란이 성공하면 내려달라고 했지만, 결국 반란 모의가 당태종에게 발각되었다. 당태종이 이원창의 죽음을 면하게 하려 했지만 여러 신하들이 굳게 다투자 이원창은 집에서 자결했으며, 이원창의 어머니, 처, 아들 등은 용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