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오재경 | →
| 3대
이수길 | →
| 4대
한당욱 |
제3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
이수길 李壽吉 | |
파일:이강의 창덕궁 인정전(1947.5).jpg 1947년 5월 《라이프지》에 실린, 창덕궁 인정전 앞에서 촬영한 사진. 친아버지 의친왕 이강과 아내 치에코와 함께 한 이수길(제일 왼쪽의 남자) | |
성명
| 이수길 (李壽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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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명
| 이주 (李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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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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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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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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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
| 이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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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모
| 조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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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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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모
| 수인당 김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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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천기자(千枝子), 김신덕(金信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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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장남 이한주(李漢柱), 차남 이범주(李范柱),
장녀 이순주(李淳柱), 차녀 이냉주(李冷柱), 삼남 이호 |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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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917년 2월 13일에 태어났다. 생모는 수인당 김흥인이며 친형제로는 이우, 이곤이 있다.
1937년 7월 24일에# 이재극의 장남이자 생가로 11촌 숙부 뻘인 이인용의 양자로 입적했다.
일본 도쿄대학 농과대학을 다니다 중퇴했다. 광복 이후에는 구황실사무국 총무과장을 거쳐 잠시 주일대표부 서기관으로 일했다. 귀국 후 인화무역주식회사 고문으로 있다가 1961년 1월부터 7월까지 구황실재산사무총국 국장 직을 역임했다.#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 직을 맡았다.# 박정희 정권 기에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칠궁에서 살았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때 강제로 쫓겨났고, 그 충격으로 1982년 12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1937년 7월 24일에# 이재극의 장남이자 생가로 11촌 숙부 뻘인 이인용의 양자로 입적했다.
일본 도쿄대학 농과대학을 다니다 중퇴했다. 광복 이후에는 구황실사무국 총무과장을 거쳐 잠시 주일대표부 서기관으로 일했다. 귀국 후 인화무역주식회사 고문으로 있다가 1961년 1월부터 7월까지 구황실재산사무총국 국장 직을 역임했다.#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 직을 맡았다.# 박정희 정권 기에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칠궁에서 살았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때 강제로 쫓겨났고, 그 충격으로 1982년 12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3. 여담
4. 가족
이수길은 일본인 치에코(千枝子,천기자)와 결혼해 이한주와 이범주 등 2남과 이순주, 이냉주 등 딸 2명을 두었고 후처 김신덕 사이에서 3남 이호를 얻었다. 이한주는 2011년 사망했고 장남 이덕이 대궁 사손 지위를 물려받았다. 이후의 가계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