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 이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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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대 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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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661년(현종 2년)[5] 10월 18일에 응천부정 이돈의 차남인 이석한의 장남 이홍일과 부인 기계 유씨의 첫아들로 태어났다. 11살에 아버지 이홍일이 아들없이 죽은 큰할아버지 이정한의 양자로 입적하여 도정궁 사손이 되었다.
이른 나이에 사마 양시[6]에 급제한 이후 1699년(숙종 25년) 수백 년간 왕으로서의 대우를 못받던 단종의 사후 복위를 경축하기 위한 증광전시[7]에서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그런데 안좋은 사건이 터진다. 시험 당시 시험지를 바꿔치고 용병을 바꿔 세우는 등의 부정행위가 드러났으며, 소나기 온 김에 대청소한다고 이참에 예전 과거 시험에서의 부정까지 모조리 적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처벌 받은 일이 생긴 것이다. 이를 '기묘과옥(己卯科獄)'이라 한다. 이세정도 여기에 엮여서(...) 1700년(숙종 26년) 평안도 의주부로 쫓겨 가 군역을 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와서 다시 참봉으로 관직 생활을 재개하였고, 직장(直長)을 거쳐 대원군 적장손 자격으로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다.
이른 나이에 사마 양시[6]에 급제한 이후 1699년(숙종 25년) 수백 년간 왕으로서의 대우를 못받던 단종의 사후 복위를 경축하기 위한 증광전시[7]에서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그런데 안좋은 사건이 터진다. 시험 당시 시험지를 바꿔치고 용병을 바꿔 세우는 등의 부정행위가 드러났으며, 소나기 온 김에 대청소한다고 이참에 예전 과거 시험에서의 부정까지 모조리 적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처벌 받은 일이 생긴 것이다. 이를 '기묘과옥(己卯科獄)'이라 한다. 이세정도 여기에 엮여서(...) 1700년(숙종 26년) 평안도 의주부로 쫓겨 가 군역을 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와서 다시 참봉으로 관직 생활을 재개하였고, 직장(直長)을 거쳐 대원군 적장손 자격으로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