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의 왕자
의창군 義昌君 | ||
의창군(義昌君)[2]
| ||
경헌(敬憲)
| ||
전주(全州)
| ||
광(珖)
| ||
장중(藏中)
| ||
기천(杞泉)
| ||
부왕
| ||
생모
| 인빈 김씨(仁嬪 金氏)
| |
부인
| 양천군부인 양천 허씨(陽川 許氏)
| |
생몰
기간 | ||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리
| |
1. 개요
2. 생애
어머니 인빈 김씨가 선조의 총애를 받았고, 또한 총명해서 아버지 선조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15세 되던 1603년(선조 36년) 4월에 혼인하였다. 부인은 양천 허씨로, 허난설헌의 오빠이자 허균의 형인 허성의 딸이다. #
1608년(광해군 즉위년) 광해군이 즉위하고 유영경의 옥사가 마무리된 후 정운원종공신 1등(定運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의창군은 광해군의 폐모살제를 안좋게 생각하여 폐모살제를 결정하는 회의에도 불참하였다. 이에 유학 지차택이 그를 처벌할 것을 주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1618년(광해군 10년) 처숙부 허균의 역모 사건 때 추대되었다는 죄목으로# 작호를 박탈당하고 경기도 내 모처에[3] 위리안치되었다.[4]#
1623년(인조 1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작호를 회복하였다. 이후 인조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종친으로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살았다.
15세 되던 1603년(선조 36년) 4월에 혼인하였다. 부인은 양천 허씨로, 허난설헌의 오빠이자 허균의 형인 허성의 딸이다. #
1608년(광해군 즉위년) 광해군이 즉위하고 유영경의 옥사가 마무리된 후 정운원종공신 1등(定運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의창군은 광해군의 폐모살제를 안좋게 생각하여 폐모살제를 결정하는 회의에도 불참하였다. 이에 유학 지차택이 그를 처벌할 것을 주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1618년(광해군 10년) 처숙부 허균의 역모 사건 때 추대되었다는 죄목으로# 작호를 박탈당하고 경기도 내 모처에[3] 위리안치되었다.[4]#
1623년(인조 1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작호를 회복하였다. 이후 인조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종친으로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