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생애
1946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상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 성보실업을 설립한 뒤, 1965년 (주)서울농약 회장으로 취임하였고, 우리나라 최고의 현금왕 중 한 사람으로 불리었다.
1981년 사재를 출연해 성보문화재단을 설립했고, 1982년에는 호림박물관을 개관했다. 그가 세운 호림박물관은 국보 8점을 포함해 문화재 1만5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지금도 민족문화유산의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이 분을 아는 문화계 인사들이 입을 모아 "그의 첫 번째 자식은 호림박물관"이라고 할 정도였다니...참고
교육사업에도 투자하여 성보학원 재단이사장을 지냈다.[1] 심지어 유화증권 대주주도 지냈고 2016년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
2001년에는 국민훈장목련장, 2009년 문화재청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11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명예 미술사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2016년 5월 15일 스승의 날 오후 1시 30분경에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94세.참고
유족으로는
장남 윤재천 성보화학 회장(농약생산)
차남 윤재동 성보실업 회장(임대업)
삼남 윤재륜 호림문화재단 이사장(호림미술관을 소유한 그 재단이 맞고 중앙일보와 사돈이었지만 현재 이혼으로 남남인 상태)
사남 윤경립 유화증권 회장이 있다.
1981년 사재를 출연해 성보문화재단을 설립했고, 1982년에는 호림박물관을 개관했다. 그가 세운 호림박물관은 국보 8점을 포함해 문화재 1만5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지금도 민족문화유산의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이 분을 아는 문화계 인사들이 입을 모아 "그의 첫 번째 자식은 호림박물관"이라고 할 정도였다니...참고
교육사업에도 투자하여 성보학원 재단이사장을 지냈다.[1] 심지어 유화증권 대주주도 지냈고 2016년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
2001년에는 국민훈장목련장, 2009년 문화재청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11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명예 미술사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2016년 5월 15일 스승의 날 오후 1시 30분경에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94세.참고
유족으로는
장남 윤재천 성보화학 회장(농약생산)
차남 윤재동 성보실업 회장(임대업)
삼남 윤재륜 호림문화재단 이사장(호림미술관을 소유한 그 재단이 맞고 중앙일보와 사돈이었지만 현재 이혼으로 남남인 상태)
사남 윤경립 유화증권 회장이 있다.
[1] 사망 당시에는 명예 이사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