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유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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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고산리
(현재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사망
경기도 양주군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유해정은 1901년 8월 22일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고산리(현재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손병희 등이 조선독립선언을 발표하자 이에 찬성하며 그 취지를 천황에게 알리기로 결심했다. 3월 하순, 그는 자택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문서를 작성했다.

"임금님을 속이고 한국을 강탈하고, 태황제 폐하를 독살하였으니 참으로 이가 갈림을 참을 수 없다. 만국이 구한국의 독립을 승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돌려주기를 꺼린다면, 분개한 백성은 일제히 궐기하여 불의의 나라에 보복할 것이다. 자신도 한 자루의 칼을 품었으니 한번 죽음으로써 원한을 씻을 날이 있을 것이다. 미국강화위원은 조선을 독립시키리고 결정하였다. 연방이 손을 잡고 그 죄를 물을 때에는 호랑이 앞의 토끼가 될 것이다."

또한 그는 문서에 천황을 '일본왕 전하' 또는 '왕'이라고 칭하고, 이태왕을 '태황제 폐하'라고 존칭했으며, 봉투에 <일본 황제 전하>라고 적었다. 이후 이 문서를 동경부 부윤에게 전달을 부탁하는 첨부서와 함께 동봉하여 친구 유학수(柳學秀)에게 부탁하여 경성부 종로4가 우편함에 투입하게 했다. 그리하여 3월 27일 동경부에 편지가 전달되었고, 동경부는 다시 4월 9일 궁내성에 이 편지를 전달했다.

이 일이 발각되면서 체포된 그는 1919년 6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황실에 대한 죄'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1919년 7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양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1년 2월 1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유해정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