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劉晙
1.1. 미디어 믹스
2. 劉俊
(? ~ 268)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여흥이 손서를 죽이고 위나라에 투항하자 곽익이 교지, 일남, 구진 등을 평정해 교주를 빼앗긴 상황이었는데, 유준은 265년에 교주자사로 임명되었고 교주를 되찾기 위해 268년 10월에 수칙, 고용 등과 함께 앞뒤 세 갈래로 3차례에 걸쳐 교지를 공격했지만 모두 양직에게 격파되었다. 양직이 모경, 동원 등을 파견해서 합포를 공격하자 합포성에서 진나라의 군사와 싸우다가 수칙과 함께 전사했으며, 이 때 울림과 구진 등이 진나라에 귀부했고 패배한 오나라의 병사들은 합포로 흩어졌다.
그가 죽은 후에는 후임으로 우사가 임명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사망하면서 도황이 교주자사에 임명되어 오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지냈다.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여흥이 손서를 죽이고 위나라에 투항하자 곽익이 교지, 일남, 구진 등을 평정해 교주를 빼앗긴 상황이었는데, 유준은 265년에 교주자사로 임명되었고 교주를 되찾기 위해 268년 10월에 수칙, 고용 등과 함께 앞뒤 세 갈래로 3차례에 걸쳐 교지를 공격했지만 모두 양직에게 격파되었다. 양직이 모경, 동원 등을 파견해서 합포를 공격하자 합포성에서 진나라의 군사와 싸우다가 수칙과 함께 전사했으며, 이 때 울림과 구진 등이 진나라에 귀부했고 패배한 오나라의 병사들은 합포로 흩어졌다.
그가 죽은 후에는 후임으로 우사가 임명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사망하면서 도황이 교주자사에 임명되어 오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지냈다.
2.1. 미디어 믹스
3. 庾峻
(? ~ 273)
서진의 인물. 자는 산보(山甫). 유민의 아버지.
영천군 언릉현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생각에 재치가 있었으며, 이전에 경사로 나가 소림에게 학문을 배웠다. 소림이 늙어서 병에 걸렸다고 해서 집에 머무르자 가서 문안하면서 통곡했다.
군의 공조를 역임하고 계연으로 천거되었다가 주의 종사로 벽소되었으며, 태상 정무가 유준을 보고 큰 그릇이라 여겼고 박사로 추천되었다. 당시 장자, 노자 등이 중시되어 유교 경전과 역사 서적이 무시되자 이에 대해 염려하면서 조용히 유교 경전을 공부했다.
조모가 태학으로 행차해서 상서에 대해 질문하자 왕숙의 이론을 지지하는 답변을 했는데, 조모는 왕숙의 이론을 대놓고 공격하는 발언을 하자 굽혔다. 비서승으로 옮겼다가 장안의 큰 옥사를 오랫동안 처리하지 못해서 유준이 시어사에 임명되어 처리하자 조야에서는 공정하다고 칭찬했다.
진나라가 건국되자 관중후에 봉해졌고 사공장사, 비서감, 어사중승을 지내다가 시중으로 옮겼고 간의대부를 더했다. 황제의 가까이에서 시경을 강론했고 중서자 하소와 시경의 풍, 아, 정변설에 대해 논쟁하다가 하소가 반박할 수 없었다.
당시 풍속은 다른 사람과 서로 비교하고 예의바르면서 사양하는 태도가 침체되자 이에 대한 상소를 올렸으며, 당시의 겉만 화려한 풍조를 싫어하고 명성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시를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글을 너무 크거나 많게 하지는 않았다.
273년에 사망해 조복 1구, 옷 1벌, 30만 전을 하사했으며, 조서를 통해 아침에 죽었으므로 저녁에 빈소를 차려 복건과 포의를 갖추고 날짜를 골라 장사지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