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 광위공
유신성 | |
시호
| 광위공(匡衛公)
|
삼사
| 태부(太傅)
태사(太師) |
관등 / 품계
| 아찬(阿湌) / 이찬(伊湌)
|
본관
| 충주 유씨
|
이름
| 신성(新城)
|
생몰연도
| ? ~ ?
|
1. 개요
2. 상세
충주 유씨 가문은 이른 시대부터 태조 신성왕을 도왔고, 신명순성왕태후가 태조와 결혼하여 자식을 여럿 낳으며 배후세력으로 크게 성장하였다. 정종 문명대왕과 광종 대성대왕은 신명순성왕태후의 자식이었고, 두 임금은 충주 유씨를 크게 중용한다.
허나 정종은 만 27세의 젊은 나이로 붕어하고, 그의 친자인 경춘원군마저 광종 대에 사망하면서 충주 유씨는 사실상 광종 대왕의 세력이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유신성은 친 광종파였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광종은 두 명의 배향공신만 있는데, 서필과 유신성은 서로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서필이 그닥 큰 호족 가문 출신이 아니며 밑바닥 출신으로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면 유신성은 태후를 배출한 대호족 가문 출신에 이찬 관등을 가진 고위 관료였다. 서필은 고려사 예지 태묘조에 개국 미칭이 붙어 있어 개국공신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신성은 개국 미칭이 없다. 태묘를 만들고 배향공신을 정한 성종이 이런 대비되는 점을 노리고 넣었는지는 의문이다.
유신성은 남은 기록이 없다. 이름과 시호 외에는 그냥 없다고 봐도 될 정도. 하지만 광종의 배향공신으로 선정될 인물이라면 그는 당시 충주 유씨 가의 가주, 혹 그에 준하는 거물인 동시에 광종의 최측근이었을 것이다.
허나 정종은 만 27세의 젊은 나이로 붕어하고, 그의 친자인 경춘원군마저 광종 대에 사망하면서 충주 유씨는 사실상 광종 대왕의 세력이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유신성은 친 광종파였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광종은 두 명의 배향공신만 있는데, 서필과 유신성은 서로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서필이 그닥 큰 호족 가문 출신이 아니며 밑바닥 출신으로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면 유신성은 태후를 배출한 대호족 가문 출신에 이찬 관등을 가진 고위 관료였다. 서필은 고려사 예지 태묘조에 개국 미칭이 붙어 있어 개국공신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신성은 개국 미칭이 없다. 태묘를 만들고 배향공신을 정한 성종이 이런 대비되는 점을 노리고 넣었는지는 의문이다.
유신성은 남은 기록이 없다. 이름과 시호 외에는 그냥 없다고 봐도 될 정도. 하지만 광종의 배향공신으로 선정될 인물이라면 그는 당시 충주 유씨 가의 가주, 혹 그에 준하는 거물인 동시에 광종의 최측근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