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제원
기준 배수량
| 2,890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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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재 배수량
| 4,378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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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 138.9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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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폭
| 12.0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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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수선
| 3.58m (상비), 4.57m (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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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력
| 3축,퍼슨식 올 기어드 터빈 X 3; 61,336 s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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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속도
| 34.78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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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속거리
| 14노트로 순항시 3,310 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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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 50구경장 5.5인치(140mm) 연장포 2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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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구경장 12센치 단장고각포 1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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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mm 대공포 3연장 1문, 2연장 4문 단장 8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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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cm 연장 어뢰 발사관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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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뢰 36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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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징
5,500톤형 경순양함과 동등한 장비를 약 3,000톤의 함체에 싣는 무모한 시도를 성공한 함으로서 세계 각국의 해군에게 주목받았다. 당시 제인연감에 특집기사가 실렸을 정도. [2]
주포수는 140mm 함포 6문, 어뢰발사관은 4체로 5,500톤형 경순양함에 비해선 적지만 화포병장의 중심선배치,[3] 어뢰발사관을 좌우 양현에 지향가능하게 하는 걸로 편현제사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허나 소형함에 중무장을 탑재하면서 경량화에 의한 고속성을 추구하여(35노트) 설계상 문제가 많이 발생했는데 선체의 용량이 적어져서 거주성은 최악이었던 데다 이후의 5,500톤 경순양함이 개장으로 항공기를 탑재가능할 여유가 났던 반면 본함은 그게 불가능했고, 항속능력도 경순양함은 고사하고 구축함에도 밀릴 정도로 저하되었다.
이후 만들어지는 일본 순양함 계열 함종에 큰 영향을 끼친 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순양함 특유의 과무장, 열악한 거주성은 모두 이 함에서 기인한 것. 순양함 뿐만이 아니라 후부키급을 시작으로 하는 일본의 구축함들 역시 그 기원을 따지면 이 함에 다다르게 된다.오히려 잠수함의 경우는 반대인데, 대체 얘들 생각은 뭔지 모르겠다.
주포수는 140mm 함포 6문, 어뢰발사관은 4체로 5,500톤형 경순양함에 비해선 적지만 화포병장의 중심선배치,[3] 어뢰발사관을 좌우 양현에 지향가능하게 하는 걸로 편현제사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허나 소형함에 중무장을 탑재하면서 경량화에 의한 고속성을 추구하여(35노트) 설계상 문제가 많이 발생했는데 선체의 용량이 적어져서 거주성은 최악이었던 데다 이후의 5,500톤 경순양함이 개장으로 항공기를 탑재가능할 여유가 났던 반면 본함은 그게 불가능했고, 항속능력도 경순양함은 고사하고 구축함에도 밀릴 정도로 저하되었다.
이후 만들어지는 일본 순양함 계열 함종에 큰 영향을 끼친 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순양함 특유의 과무장, 열악한 거주성은 모두 이 함에서 기인한 것. 순양함 뿐만이 아니라 후부키급을 시작으로 하는 일본의 구축함들 역시 그 기원을 따지면 이 함에 다다르게 된다.
4. 생애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유바리는 중국 연안의 봉쇄작전에 투입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중화민국 해군 방호순양함 차오호와 포격전을 벌여 좌초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하지만 정박지로 돌아가는 가운데 공습을 당해 5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 일본의 첫 졸전이었던 웨이크 섬 전투부터 미 해군 최악의 패전으로 여겨지는 사보 섬 해전 등 굵직한 전장을 헤쳐 나왔지만 고질적인 항속과 항해 밸런스 문제로 자체적인 전공을 세우진 못하고 함대 전체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침몰한 센다이의 뒤를 이어받아 1944년 4월 1일 제3수뢰전대의 기함이 되었으나 같은 달 27일 팔라우 제도 손소롤 섬 남쪽에서 미군의 가토급 잠수함 블루길이 발사한 어뢰가 기관실에 맞아 항해불능이 되었고, 구축함 사미다레로 견인을 시도하려 했으나 두 배의 배수량 차이가 너무 커서 견인에는 실패해 28일에 그대로 침몰해 생존자 전원을 구축함 유우즈키에게 태워보냈다. 유바리의 승조원 가운데 사망자는 19명에 불과했으나 유우즈키에 업혀 사이판에 하함한 제3수뢰전대사령부는 필리핀 해 해전의 여파로 인해 그대로 고립되어 버렸고, 그 이후는...
하나로 너무 많은 걸 추구하려 했다가 결함만 잔뜩 짊어진 군함이 되었으나, 이후 이 설계사상은 중순양함의 개발에 크게 공헌했기에 실험함으로서는 나름 큰 의미를 갖고있다. 물론 유바리 자신이 이룩한 전과는 거의 없어서 인지도는 바닥을 달린다.
해상자위대에 이 이름을 받은 유바리급 호위함이 있다. 이쪽은 전대와는 다른 무난한 구축함.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 일본의 첫 졸전이었던 웨이크 섬 전투부터 미 해군 최악의 패전으로 여겨지는 사보 섬 해전 등 굵직한 전장을 헤쳐 나왔지만 고질적인 항속과 항해 밸런스 문제로 자체적인 전공을 세우진 못하고 함대 전체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침몰한 센다이의 뒤를 이어받아 1944년 4월 1일 제3수뢰전대의 기함이 되었으나 같은 달 27일 팔라우 제도 손소롤 섬 남쪽에서 미군의 가토급 잠수함 블루길이 발사한 어뢰가 기관실에 맞아 항해불능이 되었고, 구축함 사미다레로 견인을 시도하려 했으나 두 배의 배수량 차이가 너무 커서 견인에는 실패해 28일에 그대로 침몰해 생존자 전원을 구축함 유우즈키에게 태워보냈다. 유바리의 승조원 가운데 사망자는 19명에 불과했으나 유우즈키에 업혀 사이판에 하함한 제3수뢰전대사령부는 필리핀 해 해전의 여파로 인해 그대로 고립되어 버렸고, 그 이후는...
하나로 너무 많은 걸 추구하려 했다가 결함만 잔뜩 짊어진 군함이 되었으나, 이후 이 설계사상은 중순양함의 개발에 크게 공헌했기에 실험함으로서는 나름 큰 의미를 갖고있다. 물론 유바리 자신이 이룩한 전과는 거의 없어서 인지도는 바닥을 달린다.
해상자위대에 이 이름을 받은 유바리급 호위함이 있다. 이쪽은 전대와는 다른 무난한 구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