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
후삼국시대의 인물로 염주(鹽州)[1] 일대에서 활동한 호족 혹은 도적[2]으로 휘하에 태평과 윤선을 두고 있었다.
고려사 태평 열전에서만 언급되는 인물로, 기록에 따르면 오랫동안 궁예에게 복속되지 않아서 궁예에게 격파되었다고 한다. 그 외의 자세한 행적은 기록의 부재로 알 수 없다.
궁예는 유긍순을 무찌르고 염주를 손에 넣기는 하였으나, 염주 일대가 자신에게 오랫당안 복종하지 않은 것에 대해 원한을 품고 그 휘하에 활동하던 사람들을 제대로 등용하지 않았다. 비록 남아있는 기록은 거의 없으나, 이런 점을 볼 때에 유긍순이 궁예에게 있어 만만하지 않은 상대였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3]
고려사 태평 열전에서만 언급되는 인물로, 기록에 따르면 오랫동안 궁예에게 복속되지 않아서 궁예에게 격파되었다고 한다. 그 외의 자세한 행적은 기록의 부재로 알 수 없다.
궁예는 유긍순을 무찌르고 염주를 손에 넣기는 하였으나, 염주 일대가 자신에게 오랫당안 복종하지 않은 것에 대해 원한을 품고 그 휘하에 활동하던 사람들을 제대로 등용하지 않았다. 비록 남아있는 기록은 거의 없으나, 이런 점을 볼 때에 유긍순이 궁예에게 있어 만만하지 않은 상대였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3]
2. 기타
[1] 현 황해남도 연안군 지역. 통일신라 시기에는 해고군이라는 이름이었으며, 고려시대에 염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2] 신라 진성여왕 시기에는 중앙의 지방통제력이 붕괴된 시점이라 각지에서 독자적인 세력이 성장했던 만큼 호족과 도적의 경계가 불분명해 실상 다 같은 지방세력가이다보니 누가 호족이고 누가 도적인지 구분은 무의미하다. 실상 패권을 쥔 견훤, 궁예, 왕건의 입장에서 어느 지방의 호족이 고분고분하지 않거나 불쾌하다 여기면 도적이라는 칭호를 붙여놓을 뿐이다.[3] 당시 유긍순의 휘하에서 서기관의 일종인 기실 직책을 맡았던 태평 또한 병졸로 강등되었지만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왕건의 심복이 되어 고려의 개국 이후 순군낭중에 임명되었다.[4] 다른 염주 출신 인물로 윤선도 있지만 윤선은 패서지역이 아닌 강원도 안변 지역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이뤘으며, 유긍순과도 시기상 약 10~20년 씩이나 차이가 난다. 궁예의 패서복속은 896년 ~ 898년 무렵이고 유긍순을 복속시킨 시기는 905년으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윤선은 궁예 말에 화를 피해 북쪽으로 달아나 골암진을 거점으로 흑수말갈을 끌어들여 노략질을 일삼다 왕건에게 투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