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衛)나라 43대 국군
성후 成侯 | |||
희(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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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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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遬) / 불절(不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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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위성공(衛聲公) 희훈(姬訓), 희치(姬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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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3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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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371년 ~ 기원전 3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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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생애
위 성후 11년(기원전 361년), 위(衛)나라의 공손앙(公孫鞅)이 진(秦)나라로 갔다.
위 성후 16년(기원전 356년), 위 성후는 그 세력이 미약해 결국 시호를 공에서 후로 깎아내렸다.[4]
위 성후 29년(기원전 343년), 위(魏)나라의 왕인 양혜왕은 그를 강제로 몰아내고, 위 영공의 자손인 자남경(子南勁)을 세웠다고 한다. 참고로 그는 아들을 얻지 못했다.[5]
위 성후 16년(기원전 356년), 위 성후는 그 세력이 미약해 결국 시호를 공에서 후로 깎아내렸다.[4]
위 성후 29년(기원전 343년), 위(魏)나라의 왕인 양혜왕은 그를 강제로 몰아내고, 위 영공의 자손인 자남경(子南勁)을 세웠다고 한다. 참고로 그는 아들을 얻지 못했다.[5]
[1] 세본(世本)에 기록된 이름.[2] 세본(世本)에 기록된 이름.[3] 그 뒤는 자남씨(子南氏)가 계속 뒤를 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기한다.[4] 이것은 위나라 나름대로의 보신책이었다.[5] 아들이 있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만약 아들이 있었다고 해도 양혜왕이 그 뒤를 잇게 해줄지는 불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