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
袁準
생몰년도 미상
자는 효니(孝尼). 원환의 넷째 아들.
진군 양하 사람으로 충실한 마음가짐으로 올바르게 행동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1], 오직 남이 자기보다 뛰어나지 못함을 걱정했다. 세상사에 험난함이 많아 물러나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며, 재능이 뛰어나고 저서가 10만여 언에 달했다. 역경, 주관, 시경 등에 전을 남겼고 오경에 능통해 성인이 남긴 말씀을 빠짐없이 세상에 전했고 순작은 그를 준재라 평가했다.
혜강에게 광릉산[2]을 배우고자 했지만 혜강이 인색하게 굴어서 알려주지 않았고 262년에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원준에게 가르치지 않은 것을 후회했으며, 태시 연간에 급사중이 되었다.
저서로는 원자가 있고 원자를 통해 제갈량이 북벌을 한 것에 대해 '제갈량(諸葛亮)은 중인(重人)이나 촉병(蜀兵)을 자주 사용하였으니 이는 소국(小國) 약민(弱民)이 오래 존속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했으며 종회, 등애가 촉나라를 멸망시킨 것에 대해 '등애가 1만 명으로 강유성의 험지로 들어갈때 종회가 20만 군사로 검각에서 머물며 진격하지 못하고 삼군의 군사들은 이미 굶주리고 있었으니 만일 유선이 며칠만에 항복하지 않았다면 곧 두 장수의 군은 돌아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업(功業)을 세우기가 이와 같이 어렵도다. 국가에 앞에 수춘(壽春)의 역(役,사건,전투)이 있고 뒤에 촉을 멸하는 공로가 있으니 백성들은 가난해지고 창고가 비었다. 그러므로 소국(小國)이 염려할 것은 늘 공을 세워 자존(自存)하는 것인 반면에 대국(大國)이 염려할 것은 승리한 뒤에 역량이 고갈되는 것이니 성공(成功)한 뒤야말로 경계하고 두려워할 때로다.'라는 평가를 했다.
생몰년도 미상
자는 효니(孝尼). 원환의 넷째 아들.
진군 양하 사람으로 충실한 마음가짐으로 올바르게 행동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1], 오직 남이 자기보다 뛰어나지 못함을 걱정했다. 세상사에 험난함이 많아 물러나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며, 재능이 뛰어나고 저서가 10만여 언에 달했다. 역경, 주관, 시경 등에 전을 남겼고 오경에 능통해 성인이 남긴 말씀을 빠짐없이 세상에 전했고 순작은 그를 준재라 평가했다.
혜강에게 광릉산[2]을 배우고자 했지만 혜강이 인색하게 굴어서 알려주지 않았고 262년에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원준에게 가르치지 않은 것을 후회했으며, 태시 연간에 급사중이 되었다.
저서로는 원자가 있고 원자를 통해 제갈량이 북벌을 한 것에 대해 '제갈량(諸葛亮)은 중인(重人)이나 촉병(蜀兵)을 자주 사용하였으니 이는 소국(小國) 약민(弱民)이 오래 존속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했으며 종회, 등애가 촉나라를 멸망시킨 것에 대해 '등애가 1만 명으로 강유성의 험지로 들어갈때 종회가 20만 군사로 검각에서 머물며 진격하지 못하고 삼군의 군사들은 이미 굶주리고 있었으니 만일 유선이 며칠만에 항복하지 않았다면 곧 두 장수의 군은 돌아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업(功業)을 세우기가 이와 같이 어렵도다. 국가에 앞에 수춘(壽春)의 역(役,사건,전투)이 있고 뒤에 촉을 멸하는 공로가 있으니 백성들은 가난해지고 창고가 비었다. 그러므로 소국(小國)이 염려할 것은 늘 공을 세워 자존(自存)하는 것인 반면에 대국(大國)이 염려할 것은 승리한 뒤에 역량이 고갈되는 것이니 성공(成功)한 뒤야말로 경계하고 두려워할 때로다.'라는 평가를 했다.
2. 한국의 배우
3. 원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
- 원준(소년공화국) -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