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위치
2.1. 평양설
2.2. 요동설
고조선의 왕검성으로 천도 전 중심지가 요동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평양으로 천도 없이 멸망할 때까지 쭉 요동이 도읍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 왕검성에 관한 “요동군(遼東郡) 험독현(險瀆縣)은 조선 왕의 옛 도읍이다.”라는 후한 응소(應邵)의 주를 인용해 요동군의 속현인 ‘險瀆’을 조선계 지명인 ‘검터’의 한자어 표기 ‘儉瀆’으로 이해하고, 이를 사기의 왕험성(왕검성)으로 비정해 고조선부터 위만조선의 멸망까지 도읍이 계속 요동에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고고학자 정인성은 왕검성 대동강북안설’에 대해 반박하며 위만조선과 왕검성의 위치를 랴오둥 반도 즉, 요동 지역으로 비정하며 “위만조선 왕검성은 오히려 요동반도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군현이 설치되면서 대동강 유역권으로 옮아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고고학자 정인성은 왕검성 대동강북안설’에 대해 반박하며 위만조선과 왕검성의 위치를 랴오둥 반도 즉, 요동 지역으로 비정하며 “위만조선 왕검성은 오히려 요동반도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군현이 설치되면서 대동강 유역권으로 옮아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