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영도교

문서의 이전 버전(r2)을 보고 있습니다.

역사 raw
대문 랜덤 문서 최근 토론



청계천의 교량
상류 방면
이름
하류 방면
영도교

1. 소개2. 이름과 역사3. 특징4. 교통
4.1. 지하철4.2. 버스
5. 여담


이 다리가 아니다

1. 소개

永渡橋/ Yeongdogyo

청계천다리이다.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7번째 다리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8길(숭인동)과 중구 마장로9길(황학동) 사이에 있다.

2. 이름과 역사

조선 태종 때부터 존재했던 유서깊은 다리로, 원래 이름은 '왕심평대교(旺尋坪大橋)'였다. 양녕대군이 폐세자된 후 경기도 광주귀양갈 때 이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이 다리가 영도교란 이름을 얻은데에는 단종의 슬픈 이야기가 묻어 있다. 단종이 삼촌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유배를 떠날 때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가 여기까지 나와 배웅하였는데 이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하여 사람들이 이 다리를 ‘영이별다리’, ‘영영건넌다리’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중에 이름을 한문화하여 ‘영도교(永渡橋)’가 된 것이다.[1]

조선시대흥인지문에서 왕십리 방향으로 가려면 이 다리를 꼭 건너야만 했기 때문에 교통량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성종은 주변 스님들을 동원하여 이 다리를 로 고쳐짓고 큰 규모로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 직접 ‘영도교’란 글자를 써서 두었다.

조선시대부터 역사가 전해오는 청계천다리들이 대부분 그렇듯, 영도교 역시 별칭이 많았다. 성종 때 다리를 개축한 스님들이 근처의 영미사(永尾寺)와 영도사(永導寺)에서 동원되었다하여 ‘영미교(永尾橋)’, ‘영미다리’영미영미, 그리고 ‘영도교(永導橋)’[2]로 불렀다고도 한다.

고종흥선대원군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영도교를 궁궐 공사에 쓰려고 가져갔다.(...) 대신 그 자리에는 나무로 만든 다리가 놓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돌다리보다는 덜 튼튼해서인지 장마 때마다 무너져버려 나중에는 사람들이 징검다리를 놓아 건너다니면서 한때는 ‘띄엄다리’로도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나무다리를 헐고 콘크리트로 새로 지었으나 1960년대 청계천 복개공사 때 사라졌다. 지금의 다리는 2000년대에 청계천 복원공사를 하면서 새로 지은 것으로 2005년 9월 30일 준공되었다.

3. 특징

  • 길이 30.1m, 폭 26.2m 규모이다. 가운데에 차도가 있고 양 가장자리에 인도가 있다. 차도는 2차선으로 북쪽 방향 일방통행만 가능하다. 차도와 인도 사이엔 잔디를 깔았다.

영도교 조형물
* 인도 가운데에 조형물이 있다.

영도교 알림표지판
* 다리의 앞, 뒷면 중앙에 영도교 알림표지판이 있다. 짙은 회색 바탕에 흰 글씨로 되어있으며 큰 글씨로 ‘영도교’라 쓰여있고 그 아래에는 로마자로 ‘Yeongdogyo’라 표기되어있다.

청계천 산책로로 들어가는 영도교 진입로
* 영도교의 동북쪽에 청계천 산책로로 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단, 바로 산책로와 붙어있는 게 아니고 한 번 꺾인다.

4. 교통

4.1. 지하철

4.2. 버스

5. 여담

  • 1933년 교체공사를 할 때 교각 하부의 구중(溝中)에서 관음보살목각좌상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이 관음보살상은 나중에 도난당했다가(...) 8.15 광복 후 효자동 고물상에 나온 것을 개인이 구입하여 소장 중이다.#
[1] 길 영(永), 건널 도(渡). ‘영영 건너가다’ = '영영 못돌아오다'라는 뜻이다.[2] ‘永渡橋’와는 발음은 같지만 한자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