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y(恵, ruby=え)][ruby(庭, ruby=にわ)][ruby(市, ruby=し)]
에니와시 / Eniwa City | |||||
시기(市旗)
| 문장(紋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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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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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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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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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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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294.65km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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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70,096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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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市長)
| 하라다 유타카(原田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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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회 (2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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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議長)
| 이토 마사노부(伊藤雅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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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에기카이(恵義会) (7석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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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의원단 청화회 (6석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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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당의원단 (3석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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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봄바람 모임 (2석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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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걸어나가는 무당파 네트워크 (2석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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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희망회 (1석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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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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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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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목
| 물총새(カワセ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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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홋카이도의 다른 도시들처럼 이곳도 처음에는 허허벌판이었다. 이 곳에 가장 처음 개척이 시작된 때는 1871년으로, 당시 고치 번에서 이주해 온 농민들에 의해서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개척이 진행되고, 1886년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와키 지방 등에서 단체 이주를 한 사람들이 이자리가와 강변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홋카이도 도청이 설치됨에 따라 에니와를 포함한 치토세 군이 이부리 국에서 이시카리 국으로 이관되었다.
1897년 치토세군에서 독립하게 되고 1907년 이급정촌제 시행에 따라 에니와무라(恵庭村)가 되었다. 16년 후인 1923년 일급정촌제를 시행한다.
1926년 치토세선이 개통되어 철도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1943년 촌역의 일부를 히로시마무라(현재의 키타히로시마시)로 할양했다.
1951년 정으로 승격하여 에니와초(恵庭町)가 되었다. 1961년 히로시마초(현재의 키타히로시마시)에서 정역의 일부를 편입했다. 1970년 34,500명의 인구로 시제를 시행하여 에니와시(恵庭市)가 되었다.
1987년에 인구 5만명을 돌파했고, 1993년에 인구 6만명을 돌파했다. 2010년 시제 시행 40주년을 맞았다. 2016년 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와 우호도시협정을 맺었다.
1897년 치토세군에서 독립하게 되고 1907년 이급정촌제 시행에 따라 에니와무라(恵庭村)가 되었다. 16년 후인 1923년 일급정촌제를 시행한다.
1926년 치토세선이 개통되어 철도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1943년 촌역의 일부를 히로시마무라(현재의 키타히로시마시)로 할양했다.
1951년 정으로 승격하여 에니와초(恵庭町)가 되었다. 1961년 히로시마초(현재의 키타히로시마시)에서 정역의 일부를 편입했다. 1970년 34,500명의 인구로 시제를 시행하여 에니와시(恵庭市)가 되었다.
1987년에 인구 5만명을 돌파했고, 1993년에 인구 6만명을 돌파했다. 2010년 시제 시행 40주년을 맞았다. 2016년 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와 우호도시협정을 맺었다.
3. 교통
4. 관광
- 삿포로 맥주 홋카이도 공장
- 에니와 산 - 치토세 시에도 걸쳐 있는 높이 1,320 m의 화산. 1991년부터 활화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에코린 마을. 65세 이상은 1000엔, 어른은 1200엔, 중학생이하 600엔, 장애인 / 보호자 600엔, 어른 한 사람에 어린이 다섯 명까지 무료.
- 에니와 호(えにわ湖)
- 하쿠센노타키(白扇の滝), 라루마나이타키(ラルマナイ滝), 산단노타키(三段の滝) - 모두 에니와에서 꽤 유명한 폭포이다.
- 에니와 온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