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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쪽에서 바라본 앙코르 왓 photo by lokeshi)
(사진. 서쪽에서 바라본 앙코르 왓 photo by lokeshi)
이름
| 한국어
| 앙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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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Angkor
| |
프랑스어
| Ang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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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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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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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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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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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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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앙코르 유적은 유적 보존에 있어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유적으로 꼽을 수 있다. 1992년에 캄보디아에 평화가 돌아 왔으며, 캄보디아를 재건하는 상징적 의미로서, 앙코르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후, 세계 각국의 협력과 캄보디아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앙코르 유적 보존, 복원이 시작되었다. 앙코르 유적을 보호에는 APSARA 기구를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압사라기구는 앙코르 유적을 보호, 관리하기 위한 캄보디아 정부산하 독립기구이다. 압사라 기구의 존재를 통해서 캄보디아 정부가 앙코르 유적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다. 한편 앙코르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국제협력국으로는 프랑스, 미국, 인도, 일본, 독일을 들 수 있으며, 우리나라도 2015년 말부터 유적 복원에 참가하고 있다.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 수는 연간 42만 명에 이르며, 이 중 대부분이 앙코르 유적을 방문한다. 한국인 관광객 수는 앙코르 유적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순위로 치면 중국에 이은 두 번째로 많은 수를 점하고 있다.(2014년 정보).
19세기 후반 부터 프랑스의 극동학원(EFEO)이 주축이 되어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지만, 문자기록이 부족하여,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많다. 앙코르 유적에 대한 많은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으니 다 믿지는 말자.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 수는 연간 42만 명에 이르며, 이 중 대부분이 앙코르 유적을 방문한다. 한국인 관광객 수는 앙코르 유적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순위로 치면 중국에 이은 두 번째로 많은 수를 점하고 있다.(2014년 정보).
19세기 후반 부터 프랑스의 극동학원(EFEO)이 주축이 되어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지만, 문자기록이 부족하여,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많다. 앙코르 유적에 대한 많은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으니 다 믿지는 말자.
3. 대표적인 유적
유적명
| 영문명
| 시기
| 왕
| 양식
| 종교
|
Preah Ko
| 9세기(880)
| 인드라바르만1세
| 프레아코양식
| 힌두교(시바)
| |
Bakong
| 9세기(881)
| 인드라바르만1세
| 프레아코양식
| 힌두교
| |
Lolei
| 9세기(893)
| 야쇼바르만1세
| 프레아코양식
| 힌두교
| |
Phnom Krom
| 9세기 후반~10세기 초반
| 야쇼바르만1세
| 바켕양식
| 힌두교
| |
Phnom Bok
| 9세기 후반~10세기 초반
| 야쇼바르만1세
| 바켕양식
| 힌두교
| |
Phnom Bakheng
| 10세기(907)
| 야쇼바르만1세
| 바켕양식
| 힌두교
| |
Kravan
| 10세기(921)
| 하르샤바르만1세
| 바켕양식
| 힌두교(비쉬누)
| |
Koh Ker
| 10세기 중반
| 자야바르만4세
| 코켈양식
| 힌두교
| |
East Mebon
| 10세기(953)
| 라젠드라바르만
| 프레럽양식
| 힌두교
| |
Pre Rup
| 10세기(961)
| 라젠드라바르만
| 프레럽양식
| 힌두교(시바)
| |
Banteay Srei
| 10세기(967)
| 라젠드라바르만
| 반티아이스레이양식
| 힌두교(시바)
| |
Ta Keo
| 10세기 후반~11세기 초반
| 자야바르만5세
| 클레앙양식
| 힌두교(시바)
| |
West Mebon
| 11세기
| 우다야디티야바르만2세
| 바푸온양식
| 힌두교
| |
Bapuon
| 11세기(1060)
| 우다야디티야바르만2세
| 바푸온양식
| 힌두교
| |
Thommanon
| 12세기초반
| 수리야바르만2세
| 앙코르왓양식
| 힌두교
| |
Chau Say Tevoda
| 12세기
| 수리야바르만2세
| 앙코르왓양식
| 힌두교
| |
Banteay Samre
| 12세기
| 수리야바르만2세
| 앙코르왓양식
| 힌두교
| |
Beng Mealea
| 12세기
| 수리야바르만2세
| 앙코르왓양식
| 힌두교
| |
Angkor Wat
| 12세기(1113~1150)
| 수리야바르만2세
| 앙코르왓양식
| 힌두교(비쉬누)
| |
Ta Prohm
| 12세기 후반
| 자야바르만7세
| 바이욘양식
| 불교(대승)
| |
Preah Khan
| 12세기 후반(1191)
| 자야바르만7세
| 바이욘양식
| 불교(대승)
| |
Banteay Kdei
| 12세기 후반
| 자야바르만7세
| 바이욘양식
| 불교(대승)
| |
Neak Pean
| 12세기 후반
| 자야바르만7세
| 바이욘양식
| 불교(대승)
| |
Ta Nei
| 12세기 후반
| 자야바르만7세
| 바이욘양식
| 불교(대승)
| |
Ta Som
| 12세기 후반
| 자야바르만7세
| 바이욘양식
| 불교(대승)
| |
Bayon
| 12세기 후반~13세기 초반
| 자야바르만7세
| 바이욘양식
| 불교(대승)
| |
Preah Pithu
| 13세기
| 자야바르만8세
| 후기바이욘양식
| 힌두교, 불교
|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6]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7]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8]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