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여자친구와 함께 실종
3. 어린 아이에게서 걸려온 의문의 전화
이전에도 2,3일 정도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날이 있었기 때문에 아다치씨의 미귀가에 모친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으나 며칠 뒤 직장에서 무단 결근이라는 연락을 받고 실종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외출 시 통장이나 인감, 현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가지고 나간 자동차조차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실종 8일째 되는 28일 저녁, 아다치씨의 자택에 어린 여자 아이의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토시유키 붙잡혀있어(俊之つかまっているよ)"라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10분 뒤 아무 말 없다가 끊기는 무언 전화도 걸려왔다고.
실종 8일째 되는 28일 저녁, 아다치씨의 자택에 어린 여자 아이의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토시유키 붙잡혀있어(俊之つかまっているよ)"라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10분 뒤 아무 말 없다가 끊기는 무언 전화도 걸려왔다고.
4. 납북의 가능성도
이시카와현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히 사랑의 도피로써만 치부했으나 일본의 '특정 실종자 문제 조사회'가 북한에 따른 납북일 가능성에 염두에 두고 특정 실종자로써 명단에 기재하고 있으며 납북 문제에 대해 북한 측에선 2014년 7월에 전면적으로 조사를 실행하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진전은 없다.
실종 34년째가 되는 2015년 6월 20일 아다치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현장 근처에선 모친 미치코씨와 약 50명의 인원이 참가해 하루라도 더 조속한 귀가를 바라는 집회가 열렸으며 미치코씨는 "한번이라도 만나서 '어서 오렴'이라고 말하고싶다"고 눈물을 흘렸다. 집회에선 정부에 북한에 진상 규명 요구를 결의하였고 7월 22일에는 도쿄에서 가족회에 따른 긴급 국민 집회가 열렸다.
실종 34년째가 되는 2015년 6월 20일 아다치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현장 근처에선 모친 미치코씨와 약 50명의 인원이 참가해 하루라도 더 조속한 귀가를 바라는 집회가 열렸으며 미치코씨는 "한번이라도 만나서 '어서 오렴'이라고 말하고싶다"고 눈물을 흘렸다. 집회에선 정부에 북한에 진상 규명 요구를 결의하였고 7월 22일에는 도쿄에서 가족회에 따른 긴급 국민 집회가 열렸다.
[1] 동료라는 말도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것으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