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송주면(宋宙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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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호
| 정여(正汝) / 규사(圭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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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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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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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서
| 건국훈장 독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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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송주면은 1856년 7월 26일 전라도 동복현 외남면 사평리(현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사평리)에서 태어났다.
1901년 6월 21일 통신사(通信司) 전화과주사(電話課主事)에 임명되어 판임관(判任官) 8등(八等)에 올랐으나#, 다음날 22일 사직하였다.#
1903년 6월 20일 중추원의관에 임명되었으나#, 이틀 후인 22일 사직하였다.#
이후 중추원의관에 재차 임명되었으나 1905년 10월 일제의 침략기세가 더욱 강화되자 이에 항의하여 사직하였다.
1910년 8월 15일, 경술국치의 소식을 듣자 「우리의 옛 강토를 내놓아라」는 요지의 혈서를 일제 통감부에 보내고 절명시 5수를 남긴 다음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려다가 집안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구출되었다. 이에 그 날밤 마을 앞 못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01년 6월 21일 통신사(通信司) 전화과주사(電話課主事)에 임명되어 판임관(判任官) 8등(八等)에 올랐으나#, 다음날 22일 사직하였다.#
1903년 6월 20일 중추원의관에 임명되었으나#, 이틀 후인 22일 사직하였다.#
이후 중추원의관에 재차 임명되었으나 1905년 10월 일제의 침략기세가 더욱 강화되자 이에 항의하여 사직하였다.
1910년 8월 15일, 경술국치의 소식을 듣자 「우리의 옛 강토를 내놓아라」는 요지의 혈서를 일제 통감부에 보내고 절명시 5수를 남긴 다음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려다가 집안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구출되었다. 이에 그 날밤 마을 앞 못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