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朴鳳煥
- 1941년 ~
1. 개요
2. 상세
1941년 전라남도 나주군 출생.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후, 1961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에 진학하였다.
당직자 출신 정치인으로, 1967년 민주공화당 공채(3기)로 당직에 입문한 이래, 신민주공화당, 자민련에 이르기까지 32년 간 당료 생활을 하였다. 특히, 신민주공화당 창당 이후로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연설문 작성을 전담하기도 하였다. 김종필 총재가 의원내각제 도입에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할 때 사용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시구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애증을 나타낸 "사랑에는 후회가 없다" 등의 표현이 그의 손에서 나와 당대의 문장가라는 평판을 쌓기도 했다.
자민련 정책연구실장을 맡고 있던 중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전국구 11번을 받았고, 총선 직후에는 당선권이 아니었으나 정상천 의원의 입각으로 의원직을 승계 받아 32년 만에 국회에 등원할 수 있었다.
2001년 DJP 연합이 붕괴되면서 한나라당에 입당, 이회창 당시 총재의 공보특보로 임명되었다. 정계 은퇴 후에는 KT&G 사외이사로 선임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직자 출신 정치인으로, 1967년 민주공화당 공채(3기)로 당직에 입문한 이래, 신민주공화당, 자민련에 이르기까지 32년 간 당료 생활을 하였다. 특히, 신민주공화당 창당 이후로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연설문 작성을 전담하기도 하였다. 김종필 총재가 의원내각제 도입에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할 때 사용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시구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애증을 나타낸 "사랑에는 후회가 없다" 등의 표현이 그의 손에서 나와 당대의 문장가라는 평판을 쌓기도 했다.
자민련 정책연구실장을 맡고 있던 중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전국구 11번을 받았고, 총선 직후에는 당선권이 아니었으나 정상천 의원의 입각으로 의원직을 승계 받아 32년 만에 국회에 등원할 수 있었다.
2001년 DJP 연합이 붕괴되면서 한나라당에 입당, 이회창 당시 총재의 공보특보로 임명되었다. 정계 은퇴 후에는 KT&G 사외이사로 선임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