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역사
1380년대에 성주의 지세를 흥하게 한다는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조성되었다.
경산지(京山誌) 및 성산지(星山誌)에는 조선 중기에 성주성 서문 밖 마을의 소년들이 아무 이유 없이 죽는 등 흉사가 이어졌는데, 그 이유가 마을의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라 하여 중간 지점에 숲을 조성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지관(地官)의 말에 따라 1380년대 당시 토성으로 된 성주성의 서문 밖 이천변에 밤나무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후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내고 왕버들로 다시 조성하였다.
경산지(京山誌) 및 성산지(星山誌)에는 조선 중기에 성주성 서문 밖 마을의 소년들이 아무 이유 없이 죽는 등 흉사가 이어졌는데, 그 이유가 마을의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라 하여 중간 지점에 숲을 조성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지관(地官)의 말에 따라 1380년대 당시 토성으로 된 성주성의 서문 밖 이천변에 밤나무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후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내고 왕버들로 다시 조성하였다.
3. 가치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왕버들 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으로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풍수지리, 역사, 문화, 신앙에 따라 만들어진 전통적인 마을 숲으로 향토성, 민속성, 역사성 등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4. 기타
- 성밖숲을 방문한 사람 중 성은 어디 있고 숲만 있는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는데 성주성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다가 현재 성주성의 북문과 북쪽 성벽은 복원되었다. 성밖숲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연계해서 방문할 수 있다.
- 2019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미탁에 의해 피해를 입기도 했다. 피해를 입고 난 후 복구 작업을 해서 현재는 거의 복구되었다.
5. 바깥고리
6. 천연기념물 제403호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성주 읍성(邑城) 서문 밖에 만들어진 숲으로 조선 중기 서문 밖의 어린 아이들이 이유없이 죽자 풍수지리설을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 성밖 숲에는 나이가 300∼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왕버들 59그루가 자라고 있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왕버들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으로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풍수지리, 역사, 문화, 신앙에 따라 만들어진 전통적인 마을 숲으로 향토성, 민속성, 역사성 등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