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
본 문서에는 상명대학교 역사를 정리해두었다. 이 문서에 적혀 있는 내용들은 2020년 상명대학교 요람과 그 밖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만약 잘못된 부분 또는 빠진 내용이 있다면 본 문서에다가 보충하거나 또는 수정하길 바란다.
2. 1930~50년대
2.1. 상명고등기예학교
상명고등기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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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실천여학교 수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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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상명실천여학교
상명실천여학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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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실천여학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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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부터는 정식으로 '여자실업학교'로 인가를 받고, 교명도 상명실천여학교로 바꾼다. 학교의 위치도 종로구 사직동으로 옮기고, 번듯한 2층 양옥을 3만여원을 들여 새로 지었다. 상명실천여학교는 본과 3년, 전수과 2년 과정으로 소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입학생을 받았으며, 최초 입학정원은 150명이었다.
2.3. 재단법인 상명학원의 설립
상명학원 8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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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7월 15일 재단법인 상명학원이 설립되었다.[2] 이후 6.25 동란이 터졌고, 부산 구덕산 가교사에서 상명고등학교와 상명중학교가 태동했다. 상명학원이 설립한 이 두 학교는 1979년에 재단법인 민정학원으로 독립되어 나갔다. 두 학교 모두 설립 당시에는 여학교였고, 2003년에 이르러서야 남녀공학화 되었다.
1953년에는 상명학원 재미재단이 설립되었다. 명예 이사장으로는 당시 신시내티 대학교 총장이던 월터 C. 랭삼(Walter Consuelo Langsam). 이사장으로는 한국 YMCA 총간사를 지낸 조지 A. 피치(George Ashmore Fitch)[3]
1953년에는 상명학원 재미재단이 설립되었다. 명예 이사장으로는 당시 신시내티 대학교 총장이던 월터 C. 랭삼(Walter Consuelo Langsam). 이사장으로는 한국 YMCA 총간사를 지낸 조지 A. 피치(George Ashmore Fitch)[3]
3. 1960년~1980년대
3.1. 상명여자사범대학
상명여자사범대학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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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여자사범대학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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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여자사범대학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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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상명여자대학
상명여자대학 천안캠퍼스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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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상명여자대학교
상명여자대학교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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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캠퍼스를 설립하면서 대학 규모를 불린 상명여자대학은 1987년 3월 1일에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다. 종합대학교로 승격됨에따라 상명여자대학에서 상명여자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1987년과 1988년에는 재단의 비리들(2억원가량의 횡령. 신입생과 편입생 부정입학. '대천땅'(오늘날의 상명수련원) 매입 논란)에 항거해 학내 민주화 투쟁이 벌어졌다. 중간고사 거부와 밤샘농성등의 거센 투쟁에, 당시 방정복 총장이 사퇴를 하고 교수직선제를 통해 신임 총장을 선출했다. 그러나, 이 신임 총장은 임기를 만 2년도 채우지 못하고, 방정복 총장에게 다시 자리를 넘겨줬다. 때문에 방정복 총장의 복귀에 대한 반대 투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4. 1990년대 ~ 현재
4.1. 상명대학교
상명대학교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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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 1일에 교명을 상명대학교로 바꾸고, 여자대학교에서 남녀공학대학으로 전환하였다. 2006년에는 교육부인적자원부의 대학종합평가에서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되었으나, 2011년에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선정되어 큰 위기를 겪기도 하였지만, 모범적인 후속조치로 바로 다음해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서 탈출. 이후에는 정부의 특성화사업과 프라임사업등 굵직한 사업에 다수 선정되며 상당한 국고예산을 따냈다.
2017년 서울과 천안 통합캠퍼스 체제가 되어, 수도권과 지방 중소형 대학에서 수도권 대형대학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또한 캠퍼스간 학생들의 복수전공과 매우 제한적으로(일반 편입학 정원의 10%로 한해서 캠퍼스간 전과생을 뽑는다. 참고로 상명대는 편입학 정원이 적은 편이다) 전과가 가능해졌다.
2017년 서울과 천안 통합캠퍼스 체제가 되어, 수도권과 지방 중소형 대학에서 수도권 대형대학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또한 캠퍼스간 학생들의 복수전공과 매우 제한적으로(일반 편입학 정원의 10%로 한해서 캠퍼스간 전과생을 뽑는다. 참고로 상명대는 편입학 정원이 적은 편이다) 전과가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