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皇金紫光祿大夫ㆍ故衛尉卿ㆍ帶方郡王義慈曾孫, 皇光祿大夫ㆍ故太常卿ㆍ襲帶方郡王隆之孫, 皇朝請大夫ㆍ故渭州刺史德璋之女也.
광록대부(皇金紫光祿大夫) 고(故) 위위경(衛尉卿)ㆍ대방군왕(帶方郡王) 의자(義慈)의 증손(曾孫), 황관록대부(皇光祿大夫) 고(故) 태상경(太常卿) 대방군왕(帶方郡王) 융의 손(孫)을 이으며, 아버지는 황조청대부(皇朝請大夫) 고(故) 위주자사(渭州刺史)를 지낸 덕장(德璋)의 딸이다.
부여태비 묘지명 中 부여덕장에 대한 유일한 언급.
2. 기타
- 부여덕장의 두 딸은 각각 길거[7], 당나라 황족 이웅과 혼인시켰다. 이웅과 부여태비의 결혼은 묘지명상 711년으로 확인되었지만, 부여태비의 언니와 길온의 결혼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다.
[1] 738년 부여태비가 사망한 뒤 기록된 묘지명에서 호칭 앞에 고(故)를 붙인 점을 보면 늦어도 738년 이전에 사망했한 것으로 추정된다.[2] 괵왕 이웅과 부여태비의 아들.[3] 괵왕 이웅과 부여태비의 아들.[4] 현 감숙성 딩시시 지역이다.[5] 길온의 아버지. 다만 길온이 서자라고 기록된 것을 볼 때, 적모인 부여씨의 소생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6] 오주연문장선산고의 기록 이외에도, 구당서 돌궐열전에 따르면 698년 돌궐의 침공 때 종군한 기록이 남아있다.[7] 길온의 아버지. 다만 길온이 서자라고 기록된 것을 볼 때, 적모인 부여씨의 소생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8] 오주연문장선산고의 기록 이외에도, 구당서 돌궐열전에 따르면 698년 돌궐의 침공 때 종군한 기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