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전적 의미
2. 미 해군 공작함 AR-4 USS Vestal
건조
| 1907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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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
| 1908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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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역
| 1909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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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
| 1912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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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함으로 취역
| 1913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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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
| 1946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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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적
| 1946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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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 1950년 7월 28일 스크랩을 위해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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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량
| 9,789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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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 465 ft 9 in (141.96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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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폭
| 60 ft 2 in (18.33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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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수선
| 26 ft (7.92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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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 16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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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 78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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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용량
| 20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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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 3인치 50구경 양용포 3문, 40mm 기관포 4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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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개요
2.2. 진주만 공습
2.3. 태평양 전쟁 중 활동
진주만에서 수리 및 개장이 완료된 후 1942년 8월 12일 남태평양으로 가란 명령을 받고 출항하여 동년 8월 29일 통가타푸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통가타푸에는 적 잠수함 뇌격에 피해를 본 새러토가와 노스캐롤라이나 그리고 암초에 손상을 입은 사우스다코타가 있었다.
1942년 10월 26일 뉴헤브리디스로 가던 베스탈은 바뀐 명령에 따라 뉴칼레도니아 누메아로 향했고 동년 10월 31일에 도착하여 1942년 10월 25일에서 27일 사이에 있었던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피해를 본 엔터프라이즈와 사우스다코타를 수리했다. 특히 엔터프라이즈의 경우 미 해군 공병대와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과 함께 수리하기 시작하여 동년 11월 11일에 출항시킬 수 있도록 하였고, 출항 후에도 수리요원이 상주하여 계속 수리 작업을 진행하였다. 비록 엔터프라이즈의 전방 엘리베이터를 완벽하게 수리하진 못 했지만, 작전 수행이 가능하도록 도왔고 1943년에 엔터프라이즈가 미국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을 때 과달카날 해전 당시 엔터프라이즈의 수리 작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베스탈의 승무원도 수상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베스탈의 활동은 계속되었고, 전후 1946년 8월에 퇴역하고 동년 9월에 제적되었으며, 1950년 7월에 스크랩을 위해 팔려 해체되었다.
1942년 10월 26일 뉴헤브리디스로 가던 베스탈은 바뀐 명령에 따라 뉴칼레도니아 누메아로 향했고 동년 10월 31일에 도착하여 1942년 10월 25일에서 27일 사이에 있었던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피해를 본 엔터프라이즈와 사우스다코타를 수리했다. 특히 엔터프라이즈의 경우 미 해군 공병대와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과 함께 수리하기 시작하여 동년 11월 11일에 출항시킬 수 있도록 하였고, 출항 후에도 수리요원이 상주하여 계속 수리 작업을 진행하였다. 비록 엔터프라이즈의 전방 엘리베이터를 완벽하게 수리하진 못 했지만, 작전 수행이 가능하도록 도왔고 1943년에 엔터프라이즈가 미국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을 때 과달카날 해전 당시 엔터프라이즈의 수리 작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베스탈의 승무원도 수상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베스탈의 활동은 계속되었고, 전후 1946년 8월에 퇴역하고 동년 9월에 제적되었으며, 1950년 7월에 스크랩을 위해 팔려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