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국
ビルマ國 ဗမာ | ||
1943 ~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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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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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 공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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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수
| 바 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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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 이전
| 버마 군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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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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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수립
태평양 전쟁 개전 후인 1942년 아웅 산은 자신이 양성한 버마 독립군과 일본군과 함께 영국군에 대항하여 그들을 일시적으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일본 제국은 종전 후 버마 독립을 약속하여 전쟁 초반에는 버마 지역에 군정을 실시한다. 그러나 버마인들의 전쟁 협력을 필요로 한 일본 제국은 버마를 보다 일찍 독립시키기로 결정했고, 1943년 군정을 폐지하고[1] 바 마우[2]를 국가원수로 하는 버마국이 수립된다.
독립 후 일본과 협약을 맺은 버마국은 바로 연합국에 선전포고한다. 일본군은 협약을 통해 버마에 군대를 계속 주둔할 수 있었다. 또한 버마국은 태국에 일부 동부영토를 할양해야 했다.
점령 초기 버마인들은 일본군들을 '아시아의 해방자'라며 환영했으나, 그들은 영국보다 더 가혹한 통치를 펼쳐 수많은 버마인들을 학살해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다. 이에 아웅 산은 1944년 30인의 동지와 함께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AFPFL)'을 조직하여 일본 제국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일본 제국은 종전 후 버마 독립을 약속하여 전쟁 초반에는 버마 지역에 군정을 실시한다. 그러나 버마인들의 전쟁 협력을 필요로 한 일본 제국은 버마를 보다 일찍 독립시키기로 결정했고, 1943년 군정을 폐지하고[1] 바 마우[2]를 국가원수로 하는 버마국이 수립된다.
독립 후 일본과 협약을 맺은 버마국은 바로 연합국에 선전포고한다. 일본군은 협약을 통해 버마에 군대를 계속 주둔할 수 있었다. 또한 버마국은 태국에 일부 동부영토를 할양해야 했다.
점령 초기 버마인들은 일본군들을 '아시아의 해방자'라며 환영했으나, 그들은 영국보다 더 가혹한 통치를 펼쳐 수많은 버마인들을 학살해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다. 이에 아웅 산은 1944년 30인의 동지와 함께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AFPFL)'을 조직하여 일본 제국에 저항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