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백동수(白東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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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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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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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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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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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영숙(永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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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 야뇌(野餒), 인재(靭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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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
| 평안병사 증호조판서 증조부 백시구
장연현감 조부 백상화 동지중추부사 아버지 백사굉 동생 백동간 아들 백상진, 백심진 |
1. 개요
2. 일대기
대대로 장수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경종 때 무관을 지낸 충장공 백시구의 후손이다. 서얼 출신의 무인인데다가 말년엔 정조의 승하 이후 노론으로부터 벼슬에서 축출되어 유배당함으로써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인물이다.
1771년 식년무과에 합격하였으나, 인원 초과로 인해 벼슬을 얻지 못하고 강원도 인제 기린협(지금의 기린면)으로 들어가 혼자 무술을 연마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정조의 즉위 이후, 친위 군영인 장용영이 조직되며 1788년 45세의[4] 늦은 나이에 장용영의 초관에 임명되며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1790년 무예24기를 정리한 군사 훈련 교재인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며 무인으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그러던 중 1800년 6월 정조가 갑작스레 승하하게 되고 6년 뒤인 1806년. 노론 세력에 의해 벼슬자리에서 축출당하였으며 유배형을 선고당한다. 1810년에 다시 기용되어 군기부정에 제수되고 1816년에 74세로 사망한다.
1771년 식년무과에 합격하였으나, 인원 초과로 인해 벼슬을 얻지 못하고 강원도 인제 기린협(지금의 기린면)으로 들어가 혼자 무술을 연마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정조의 즉위 이후, 친위 군영인 장용영이 조직되며 1788년 45세의[4] 늦은 나이에 장용영의 초관에 임명되며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1790년 무예24기를 정리한 군사 훈련 교재인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며 무인으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그러던 중 1800년 6월 정조가 갑작스레 승하하게 되고 6년 뒤인 1806년. 노론 세력에 의해 벼슬자리에서 축출당하였으며 유배형을 선고당한다. 1810년에 다시 기용되어 군기부정에 제수되고 1816년에 74세로 사망한다.
3. 성격
4. 창작물에서
4.1. 서적
백동수라는 인물이 부각된 것은 김영호의 저서인 《조선의 협객 백동수》의 영향이 크다. 사실상 최초로 백동수라는 인물에 조명을 맞춘 책으로 이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백동수라는 인물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조 시대의 배경과 몇 남지 않은 사료 기록을 바탕으로 김영호가 저술한 단행본이며 저자의 상상이 많이 들어갔고 실제와 창작을 명확하게 구분짓지 않았다는 단점이 존재하나[5] 무예도보통지의 실기를 담당한 인물에 주목했다는 점과 이 책이 시발점이 되어 만화도 나오고 드라마 소재로 당당히 등극했다는 점에 있어서 콜럼버스의 달걀과도 같은 존재.
또한 2011년 이수광이 쓴《조선 최고의 무사 백동수》에서는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호걸로 묘사되었다.
또한 2011년 이수광이 쓴《조선 최고의 무사 백동수》에서는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호걸로 묘사되었다.
4.2. 만화
4.3. TV 드라마
4.4. 영화
2012년 개봉한 한국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한다. 영조에서 정조로 넘어가는 시기에 서얼 출신으로 서빙고에서 얼음 관리하는 벼슬에 있다가 음모에 말려들어 귀양살이하는 무관 백동수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실제 백동수와 동일인물이다. 오지호가 연기한다.
4.5. 게임
[1] 전국에서 무예가 뛰어난 인재들만 모아놓은 장용영에서도 백동수의 신체능력은 사람들 눈에 띄었다는 말.[2] 전국에서 무예가 뛰어난 인재들만 모아놓은 장용영에서도 백동수의 신체능력은 사람들 눈에 띄었다는 말.[3] 전국에서 무예가 뛰어난 인재들만 모아놓은 장용영에서도 백동수의 신체능력은 사람들 눈에 띄었다는 말.[4] 요즘의 환갑과 비슷하게 대우받는 연령이라고 한다. 하지만 신체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에, 엘리트 집단인 장용영 무사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신체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고.[5] 백동수가 검선 김광택에게 검술을 배웠다는 것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