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배산 전투
拜山戰鬪 | ||
시기
| 577년(?)
| |
장소
| ||
원인
| 사료 부족으로 인한 원인 불명[4]
| |
교전국
| ||
지휘관
| 지휘관 불명
| |
병력
| 병력 규모 불명
| 병력 규모 불명
|
피해
| 피해 규모 불명
| 피해 규모불명
|
결과
| 고구려의 대승
| |
영향
| 온달의 정치적 입지 강화.
| |
1. 소개
2. 전투
정확한 시기는 불명이나 《동사강목》에는 평원왕 19년(577년)에 벌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북주에 의해 북제가 멸망한 577년 정월부터 무제가 사망한 578년 6월 사이에 일어난 전투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다. 일단 《동사강목》과 《삼국사기》의 기록을 종합했을 때, 북주의 우문옹이 군대를 내어 요동을 침공했고, 이때 평원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정했다고 볼수 있다. 병력의 수는 불명이다.
이때 북주의 무제(武帝)가 군사를 내어 요동(遼東)에 쳐들어오자, 왕은 군대를 거느리고 배산(拜山)의 들에서 맞아 싸웠다. 온달이 선봉이 되어 날래게 싸워 수십여 명의 목을 베니, 모든 군사들이 승세를 타고 떨쳐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
《삼국사기》 온달 열전.
그 뒤에 주(周) 의 무제(武帝)가 지나 북쪽을 통일하여 위염을 떨치고 , 고구려의 강함을 시기하여 요동에 침입해와서 배산(拜山)의 들에서 맞아 싸우는데, 어떤 사람이 혼자서 용감하게 나가 싸웠다. 칼 쓰는 솜씨가 능란하고 활 쏘는 재주도 신묘하여 수백 명 적의 군사를 순식 간에 목베었다. 알아보니 그는 곧 온달이 었다.
《조선상고사》
3. 밝혀지지 않은 것들
- 전투가 벌어진 장소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논란이 있다.
- 또한 배산이라는 위치도 현재까지 알수가 없다.
4. 여담
- 통천문이라는 역사소설의 초반부가 해당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재만 차용한 것이고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
-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9권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