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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No.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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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우
朴哲祐 / Chul-Wu Park | |
생년월일
| |
출신지
| |
국적
| |
가족관계
| 아들 박세혁
|
학력
| |
포지션
| |
투타
| |
프로입단
| |
소속팀
| |
지도자
| 파일:SK_Wyverns_logo_1st.png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00)
파일:external/s20.postimg.org/KIAtigersold.png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01~2005) 파일:9kpR6gN.jpg 진흥고등학교 감독 (2006~2009) 서울 해치 감독 (2010~201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ia_Tigers.svg.png KIA 타이거즈 2군 총괄코치 (201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ia_Tigers.svg.png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2013) 고양 원더스 타격•수비코치 (2014)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11px-Doosan_Bears.svg.png 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 (2015~2017)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11px-Doosan_Bears.svg.png 두산 베어스 잔류군 타격코치 (2017)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11px-Doosan_Bears.svg.png 두산 베어스 1군 벤치코치 (2018~2019.7.19.)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11px-Doosan_Bears.svg.png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9.7.19.~) |
수상
| 한국시리즈 우승 5회 (1987~1989, 1991, 1993)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 (1989) 한국시리즈 MVP (1989) |
1. 소개
2. 선수 경력
광주일고와 동국대를 졸업한 후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좌타자가 대대로 부족했던 해태 타이거즈에 굉장한 청량감을 주던 선수였다. 왼손잡이 덕후였던 김응용감독의 지지를 얻어 많은 기회를 얻었으며, 별명이 작은 코끼리였을 정도. 큰 덩치와 아주 느린 발에 비해[1], 거포라고 하기엔 약간 모자란 중장거리 타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타이거즈의 우타자 일색인 타선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선수였다. 그 덕에 우승반지도 5개나 꼈고... 그리고 그때 그 시절 시절 해태 선수들 대개가 그랬듯 술을 아주 좋아했던 것 같다(...).이병훈이 이야기하는 일화 그래도 이병훈의 썰에 의하면 김성한, 이순철을 비롯 무서운 고참 선수들이 즐비했던 해태 선수들 가운데서 사람은 좋았던 듯 싶다...
특히 1989년에는 팀내 유일한 3할 타자로서 빙그레 이글스의 고원부, 삼성 라이온즈의 강기웅과 함께 시즌 막판까지 타격왕 경쟁을 벌였고, 같은 해 빙그레 이글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18타수 7안타(타율 3할 7푼 7리)의 기록으로 팀의 4연패에 기여하며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파일:external/www.donga.com/mvp_89.jpg
(1989년 한국시리즈 MVP 수상 모습)[2]
1993 시즌이 끝나고 쌍방울로 트레이드 되었다.[3] 여기서도 주로 지명타자, 1루수로 활동했다. 쌍방울의 첫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던 현대 유니콘스와의 1996년 플레이오프에서는 1차전에서 9회말에 대타로 나와 끝내기 결승 홈런을 치기도 했지만, 팀의 탈락으로 빛이 바랬다.
1998년 시즌후에 은퇴했다.
좌타자가 대대로 부족했던 해태 타이거즈에 굉장한 청량감을 주던 선수였다. 왼손잡이 덕후였던 김응용감독의 지지를 얻어 많은 기회를 얻었으며, 별명이 작은 코끼리였을 정도. 큰 덩치와 아주 느린 발에 비해[1], 거포라고 하기엔 약간 모자란 중장거리 타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타이거즈의 우타자 일색인 타선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선수였다. 그 덕에 우승반지도 5개나 꼈고... 그리고 그때 그 시절 시절 해태 선수들 대개가 그랬듯 술을 아주 좋아했던 것 같다(...).이병훈이 이야기하는 일화 그래도 이병훈의 썰에 의하면 김성한, 이순철을 비롯 무서운 고참 선수들이 즐비했던 해태 선수들 가운데서 사람은 좋았던 듯 싶다...
특히 1989년에는 팀내 유일한 3할 타자로서 빙그레 이글스의 고원부, 삼성 라이온즈의 강기웅과 함께 시즌 막판까지 타격왕 경쟁을 벌였고, 같은 해 빙그레 이글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18타수 7안타(타율 3할 7푼 7리)의 기록으로 팀의 4연패에 기여하며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파일:external/www.donga.com/mvp_89.jpg
(1989년 한국시리즈 MVP 수상 모습)[2]
1993 시즌이 끝나고 쌍방울로 트레이드 되었다.[3] 여기서도 주로 지명타자, 1루수로 활동했다. 쌍방울의 첫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던 현대 유니콘스와의 1996년 플레이오프에서는 1차전에서 9회말에 대타로 나와 끝내기 결승 홈런을 치기도 했지만, 팀의 탈락으로 빛이 바랬다.
1998년 시즌후에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3.1. KIA 타이거즈 2기 시절
3.2. 고양 원더스 시절
3.3. 두산 베어스 시절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면서 김성근 신임 감독이 있는 한화 이글스 타격코치로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역시 두산의 새 사령탑이 된 김태형 감독 또한 1군 타격코치로 박철우 코치를 필요로 했고, 김성근 감독이 인스트럭터 시절에 제자였던 김태형 감독을 위해 흔쾌히 동의하면서 박철우 코치의 두산 합류가 확정되었다. 한편 아들 박세혁이 2013 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군 복무 중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부자가 코치-선수로 한 팀에서 함께 뛸 가능성도 생겼다. 결국 16시즌 박세혁이 1군에 등록되면서 부자가 덕아웃에서 같이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같은 팀에 아들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인 듯하다. 박세혁이 홈런을 치고 들어오면 활짝 웃지 못하고 하이파이브만 한다. (눈치 보지 마시고 활짝 웃으세요!)
베어스포티비에서는 박세혁의 노안(?)에 대한 장난으로 박세혁과 박철우 코치를 동일인물로 헷갈려 만들게 한다.
베어스포티비에서는 박세혁의 노안(?)에 대한 장난으로 박세혁과 박철우 코치를 동일인물로 헷갈려 만들게 한다.
4. 논란
4.1. 정영일 혹사 논란
파일:정영일 고교시절 혹사.png
광주진흥고 감독 재임 시절 3학년생이던 정영일을 혹사시킨 감독이였다. 2006년 4월 대통령배 1회전에서 경기고를 상대로 13 2/3이닝 242구를 던지게 했다. 혹사가 최고조에 올랐을 때는 청룡기인데, 9일 동안 50.2이닝[5] 741구를 던지는 말도 안되는 투구수를 기록했다. 동료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광주 무등기에서도 많은 공을 던지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정영일은 미국에 가서도 팔꿈치 부상 탓에 제대로 못 던지고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2014년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에 겨우 지명되어 상무에서 군 복무 후 SK 소속으로 활약 중이다. 이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있는 팬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늘 까이고 있다. 극단적으로 까는 사람들은 자기 아들이 투수였어도 그렇게 백정처럼 보냈을 거냐며 까기도 한다.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정영일이 두산 타선을 5경기 6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막아내고 MVP급 활약으로 SK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면서 소소하게나마 복수(?)를 하게 됐다.
광주진흥고 감독 재임 시절 3학년생이던 정영일을 혹사시킨 감독이였다. 2006년 4월 대통령배 1회전에서 경기고를 상대로 13 2/3이닝 242구를 던지게 했다. 혹사가 최고조에 올랐을 때는 청룡기인데, 9일 동안 50.2이닝[5] 741구를 던지는 말도 안되는 투구수를 기록했다. 동료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광주 무등기에서도 많은 공을 던지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정영일은 미국에 가서도 팔꿈치 부상 탓에 제대로 못 던지고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2014년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에 겨우 지명되어 상무에서 군 복무 후 SK 소속으로 활약 중이다. 이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있는 팬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늘 까이고 있다. 극단적으로 까는 사람들은 자기 아들이 투수였어도 그렇게 백정처럼 보냈을 거냐며 까기도 한다.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정영일이 두산 타선을 5경기 6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막아내고 MVP급 활약으로 SK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면서 소소하게나마 복수(?)를 하게 됐다.
4.2. 경기 중 욕설 파문
5. 여담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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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사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87
| 29
| 47
| .234
| 11
| 1
| 0
| 1
| 4
| 3
| 0
| 4
| 9
| .294
| .319
| .613
| |
1988
| 36
| 69
| .188
| 13
| 4
| 0
| 0
| 7
| 7
| 1
| 2
| 10
| .208
| .246
| .455
| |
1989
| 112
| 340
| .318
(3위) | 108
| 15
| 1
| 13
(5위) | 59
| 47
| 0
| 35
| 41
| .381
| .482
| .864
| |
1990
| 114
| 363
| .284
| 103
| 21
(5위) | 1
| 10
| 45
| 40
| 0
| 53
| 46
| .373
| .430
| .803
| |
1991
| 125
| 422
| .282
| 119
| 24
| 2
| 14
| 80
(5위) | 41
| 0
| 60
| 55
| .371
| .448
| .819
| |
1992
| 116
| 362
| .271
| 98
| 21
| 0
| 9
| 66
| 39
| 1
| 43
| 44
| .346
| .403
| .749
| |
1993
| 81
| 197
| .264
| 52
| 6
| 0
| 2
| 17
| 19
| 0
| 28
| 28
| .356
| .325
| .680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사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94
| 89
| 179
| .291
| 52
| 9
| 0
| 2
| 25
| 11
| 0
| 17
| 34
| .350
| .374
| .725
| |
1995
| 95
| 287
| .265
| 76
| 12
| 1
| 5
| 35
| 21
| 3
| 28
| 42
| .330
| .366
| .696
| |
1996
| 28
| 32
| .188
| 6
| 0
| 0
| 1
| 2
| 1
| 0
| 11
| 7
| .395
| .281
| .677
| |
1997
| 77
| 103
| .340
| 35
| 6
| 0
| 1
| 18
| 9
| 2
| 18
| 14
| .438
| .427
| .865
| |
1998
| 59
| 118
| .237
| 28
| 2
| 0
| 1
| 14
| 9
| 0
| 18
| 26
| .336
| .280
| .615
| |
KBO 통산
(12시즌) | 961
| 2519
| .278
| 701
| 121
| 5
| 59
| 372
| 247
| 7
| 317
| 356
| .358
| .401
| .758
| |
7. 관련 문서
[1] 같은팀의 장채근과 더불어 프로야구 최하위권 주력이었다. 덕분에 둘이 주자로 같이 나갔을 경우 아주 갑갑한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아들인 두산 베어스의 박세혁은 포수임에도 프로야구 상위권의 주력을 가지고 있어 대주자로도 활용될 정도[2] 즐거운 일 몇 달 뒤 박세혁이 태어난다.[3] 좌타, 지명타자 자리는 박재용이 물려받는다.[4] KIA 타이거즈의 투수인 신창호와 김진우가 이 구단에서 뛰기도 했다.[5] 참고로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최동원이 10일동안 40이닝. 단기전 역대급 혹사로 꼽히는 1984년 최동원보다 더 심한 혹사를 당했다는 것이다.